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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명물 된 동네 밴드 … 비비정 마을 ‘화백밴드’

중앙일보 2012.01.17 00:00 종합 20면 지면보기
‘화백밴드’가 14일 전북 완주군 비비정 마을 원두막에서 연주 솜씨를 뽐내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김승태·김영두·박사문·유명자씨. 그 뒤쪽은 찬조 출연한 옆동네 주민들. [완주=프리랜서 오종찬]


14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 마을 입구에서 열린 ‘2011 신년축제’. 무대에 오른 밴드가 ‘동백아가씨’ ‘별난사람’ 등 트로트 노래를 흥겹게 연주하자 주민·방문객 등 300여 명은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고스톱은 그만, 여가 바꿔보자”
이장은 기타, 예순넷 형님은 드럼
군내 문화행사 단골 멤버로



 이 마을 주민 5명으로 구성된 ‘화백밴드’다. 화려한 백수의 줄임말이다. 이장 박사문(61)씨는 베이스기타를 잡고 김광진(52)씨는 리드기타, 김승태(41)씨는 기타, 김영두(64)씨는 드럼을 친다. 홍일점 유명자(62)씨는 아코디언을 켠다. 막내인 김승태씨는 전주에서 직장을 다니다 2년 전 귀농했고, 나머지는 토박이로 농사를 짓는다.



 “겨울이면 마을회관에 틀어앉아 고스톱을 치고, 종일 TV나 쳐다보던 농촌의 여가문화를 바꿔야지요. 음악 활동이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악기 잡고 노래하면서 즐겁게 일하고, 흥겹게 놀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어요. 스트레스 풀고, 주민 화합을 다지는 데도 최고입니다.”



 비비정 마을 주민들이 악기를 잡은 것은 2011년 7월. 완주군이 ‘늙어가는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자’며 마을 공동체 문화활동 사업을 시작하면서다. 농촌 지역은 주민의 태반이 65세 이상 노년층이다. 비비정 마을도 전체 80여 명 가운데 65세 이상 할머니·할아버지가 70%를 차지한다.



‘농촌에 생기가 돌아야 젊은이가 들어오고 지역도 살아난다’고 생각한 지방자치단체들은 최근 마을별 문화·교육 사업을 앞다퉈 펼치고 있다. 박사문씨는 “완주군이 문화사업을 제의해 와 주민들 사이에 ‘노래를 좋아하니 음악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라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마을에서 ‘젊은이’ 소리를 듣는 7명이 모였다. 완주군이 악기를 사주고 강사까지 초빙해 줬다. 매주 수요일 밤 두 시간씩 레슨을 받았다. 그래도 악기를 익히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기본음을 짚는 것도 자꾸 헷갈려 악보에 아예 손가락을 그려놓고 연습을 했다. 돌아서면 까먹곤 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외우고 연습하기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낮에 들판에서 일하고 밤에 피곤한 몸으로 이끌고 나오는 것은 힘들었다. 두 명이 중도 탈락했다. 남은 다섯 명은 “조금만 더 힘을 내자”며 서로를 다독였다. 6개월간 주경야음(晝耕夜音)으로 구슬땀을 흘린 결과, 이제 웬만한 곡은 스스로 악보를 보고 연주할 수 있는 단계에 왔다. 화백밴드에 맞춰 마을의 할머니 7명이 ‘건달시스터즈’라는 보컬까지 만들었다. 비비정 마을의 밴드·보컬은 완주군 내 각종 문화행사에 단골로 초청받는 명물이 되었다.



 음악은 마을 주민을 한마음으로 묶고 있다. 주민이 힘을 모아 과수원 공동 경작, 농가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하고 전통술 생산에도 나선다. 임정엽 완주군수는 “비비정 마을은 일과 놀이가 즐겁게 결합하고, 남녀노소가 함께 어우러지는 생활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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