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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덩샤오핑 프레임에 갇힌 한국

중앙일보 2012.01.17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베이징에서 북핵 문제를 놓고 중국 외교부 핵심 당국자와 나눈 대화 중 일부다.



 “북한이 핵무장을 추진하면 한국·일본·대만도 핵보유의 명분을 얻게 된다. 동북아에 핵무기 도미노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이번 핵실험의 최대 피해자는 중국 아닌가.”



 “한반도 비핵화는 동북아 안정에 필수조건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가정에 불과하다.”



 북한의 핵보유는 동북아 안정을 해치는 암초이기 때문에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당시 중국 외교부는 ‘한란(悍然·제멋대로)’이란 거친 표현을 서슴지 않으며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당시 한·중 양국 정부는 북핵을 놓고 같은 목소리였다.



 며칠 전 한·중 정상회담이 끝난 뒤 주중 한국대사관 고위 당국자는 양국 정상이 한반도 안정 문제에 대해 완벽한 공감대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을 겪으면서 벌어졌던 양국관계도 김정일 사망사태를 맞으면서 다시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위계와 격식을 좋아하는 중국의 립서비스가 아니냐’며 뭇매를 맞았던 ‘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가 오랜만에 이름값 좀 했다는 안도감이 전해졌다.



 6년 만에 한·중이 전략 사안에 공조를 이뤄냈다고 하지만 다가올 현실은 살얼음판이다. 권력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이 집권 명분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경제 회복뿐이라는 게 중국 관영 매체와 전문가들의 공통 인식이다. 김정은 정권의 안착이 한반도 안정을 보장한다는 계산이다. 비핵화를 미끼로 대화와 6자회담을 종용해 왔던 북한은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선 비핵화를 쏙 뺐다. 권력부터 굳히고 나서 외부와 핵 협상을 하겠다는 속내일 것이다.



 북핵에 정통한 베이징 외교가의 한 인사는 “한국에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안정은 선후를 바꿀 수 없는 문제지만 중국으로선 량마스(兩碼事·별개의 사안)”라고 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대외정책은 덩샤오핑(鄧小平)이 규정한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를 축으로 전개됐다. 힘을 기르려면 중국 주변 환경이 반드시 안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 수뇌부의 뇌리를 지배하는 대명제는 안정이다. 비핵화 선결조건 없이도 북한의 안정을 위해선 경제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구도가 이러니 중국과의 갈등을 피하는 묘수를 찾기 어렵다. 이런 중국의 전략적 목표와 충돌하지 않는 길은 비핵화 없이는 한반도 안정이 없다는 인식을 중국 스스로 갖게 하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가 별개라는 생각은 북한이 핵무장을 해도 이 지역에 핵 도미노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결정적인 레버리지를 차버리고 우리의 북핵 외교가 덩샤오핑이 만든 프레임 속에서 홀로 분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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