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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가축 아닌 가족이던 소 … 멍에 내리고 굴레 벗더니 배곯아 죽기에 이르렀구나

중앙일보 2012.01.17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우리 민족에게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사람과 함께 한평생 논밭을 일구고 짐을 나르는 일꾼이자 가족이었다. 코뚜레를 끼우고 멍에를 지웠지만 생구(生口)라 불렀다. 함께 먹고 함께 사는 한 식구란 의미였다.



 정조 때 문인 이옥이 들려주는 소 얘기가 재밌다. 이옥은 뛰어난 글재주에도 불구하고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주창한 정조에게 ‘바르지 못한 문장’으로 찍혀 벼슬길이 막힌 선비였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자기 글을 고집해 오늘날 우리에게 옛 사정을 전한다.



 “소가 무거운 써레를 끌고 높은 비탈을 오르는데 미끄러져 뒷걸음질하면 사람이 꾸짖고 때려 급박하기가 숨조차 쉴 수 없다. 그래서 경기도 소들은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수척하며 목덜미에 굳은살이 박이고 등이 움푹 파였다. 하지만 날마다 백여 리를 가고 짐을 높이 싣고 밭을 오래 갈아도 피로해 보이지 않는다.” (『완역이옥전집』)



 그런데 이옥이 어느 날 충청도를 지나다 살찐 소를 놔두고 혼자서 보리밭을 가느라 애먹는 농부를 보았다. “시험 삼아 ‘소에게 일을 시켜보라’ 했더니 소는 쟁기를 이기지 못하고 열 걸음도 옮기기 전에 헐떡거렸다. 차마 볼 수 없어 멍에를 벗겨줬는데 그 소는 저녁 때까지 먹지도 않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소 주인이 근심하며 ‘소고기가 줄어든 것이 이백 닢이오’ 했다.”



 그 소는 이른바 육우였던 셈이다. “호서지방에서는 백성들이 대체로 소를 재산으로 삼는다. 송아지 적부터 보리와 콩을 삶아 하루에 세 구유씩 먹이고 날마다 긁고 씻겨 때깔을 좋게 만들고 사람이 타지도 물건을 싣지도 밭을 갈게 하지도 않으니 혹시 살이 찌지 않을까 걱정해서다.”



 예부터 소들도 팔자가 달랐던 것이다. 어떤 팔자가 나을지는 모를 일이다. 고된 일을 하던 소는 천수(天壽)를 누렸지만 맛난 음식만 먹던 소는 몇 년밖에 살지 못했으니 말이다. 도살이 금지됐었지만 수요가 많다 보니 밀도살이 성행한 까닭이다. “제사와 잔치·봉양·간병에 오로지 소고기만 쓴다. 뿔·가죽·발굽·털·기름·뼈 등 모두 찾는 사람이 있다.” 거기엔 지위고하가 따로 없었다. 비슷한 시기 정조의 한탄을 들어보자. “왕손이 법을 어기고 소를 잡아 몰래 고기를 파는가 하면 (…) 너무도 부끄러워 할 말이 없다.” (『정조실록』)



 오늘날 생구는 거의 없다. 대신 멍에도 벗고 일도 하지 않는다. 3년도 못 살지만 맛난 사료를 먹는다. 그런데 굶어 죽는 소가 나온다. 소값이 떨어지고 사료값은 오르기 때문이란다. 그게 소 잘못인가. 예나 지금이나 소는 소일 뿐인데 ‘일하는 천수’도 ‘배부른 몇 년’도 아닌, 팔자에 없는 죽음을 강요하는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을 어찌할꼬.



이훈범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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