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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트라우마’ 형욱이 1년 만에 웃음 찾은 비결은 …

중앙일보 2012.01.16 05:10 건강한 당신 1면 지면보기
학교 내 집단 따돌림은 예방과 치료가 중요하다. 지난 13일 중구 정신보건센터에서 중학교 학생들이 최원예(29?여?오른쪽) 무용치료사에게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무용 치료 수업을 받고 있다. [김수정 인턴기자]
“이렇게 사는 걸 이제는 끝내고 싶어요. 인생에서는 힘이 최고더군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소용없어요.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겠어요.”

[커버스토리] 집단 따돌림 후유증 치료 어떻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집단 따돌림을 받아 온 서형욱(14·가명)군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김재원 교수 앞에서다. 서군은 2년 동안 왕따를 당했다. 서군의 어머니가 학교를 찾아가 항의하자 아이들은 서군에게 “마마보이냐”며 더 따돌렸다. 서군은 집에서도 이상하게 변해갔다. 동생을 자주 때렸고, 지시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쉽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교 성적도 뚝 떨어졌다. 서군의 어머니 김진희(42·가명)씨는 “아이가 예전과는 너무 달라져 가족 모두 괴로워했다. 혹여 아이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두려워 병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장기간 따돌림으로 인한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서군은 입원치료와 함께 약물·미술·상담·역할극 치료를 받았다. 1년 뒤 서군은 표정이 밝아졌고 교우관계도 원만해졌다.



 왕따를 당한 학생들은 정신질환을 앓기 쉽다. 왕따를 예방하는 것 못지 않게 피해 학생의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왕따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가 행동으로 나타나면 이미 심각한 상황”이라며 “따돌림 초기에 부모와 교사가 전문가의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군처럼 따돌림을 경험한 학생은 대부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다. 김 교수는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참전 군인이 전투 상황을 반복해서 기억하며 괴로워하는 증상과 비슷하다”도 말했다. 서군도 친구들에게 폭력을 당했던 순간을 잊으려 해도 자꾸 생각났고, 괴롭힘을 당하는 꿈을 반복해서 꿨다.



 김 교수는 “피해 학생이 자살을 결심할 정도라면 부모를 잃었을 때의 스트레스 정도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전쟁·교통사고처럼 일회성의 사건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피해 학생을 괴롭히기 때문에 수위가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왕따를 당한 학생이 주로 겪게 되는 정신질환은 뭔가.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에 빠진다. 폭력을 당하던 상황을 반복해서 재경험하거나, 폭력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빠지기도 한다. 무기력증·불안증·우울증도 나타난다.”



-피해 학생이 가해자로 돌변하기도 한다던데.



 “서군처럼 따돌림 강도가 높아질수록 동생을 구타하거나 엄마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폭력을 반복해서 당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행동을 따라 하게 된다. 보통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시에 경험했을 때 정신질환이 더 많이 나타나고 치료도 어렵다.”





따돌림으로 인한 징후가 나타날 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빨리 개선될 수 있다. 상담 뒤 입원을 하거나 항우울제 등 약물을 복용하기도 한다. 전문 상담사와 미술·음악 치료를 받거나 가족과 함께 상담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손 원장은 “아이가 소리 없는 신호를 보내는 시기가 있다”며 “그때 부모·학교·의사(전문상담자)가 개입해 치료를 시작할 때 가장 치료 효과가 좋다”고 설명했다. 특히 따돌림을 당했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에 비해 고학년 학생은 정신과적 질환이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



 초등학교 5~6학년 정도가 되면 자아 정체성이 생기고, 또래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하는 사회성 발달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이때 따돌림으로 자존감이 낮아지고 아무도 자기 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갖게 될 수 있다.



 왕따를 당하고 제때 치료를 받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대인관계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동료에 대한 신뢰감의 형성이 어려워진 상태에서 언제 또 왕따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두통·복통·근육통 등 신체 변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심한 경우 피해의식이나 피해망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아이들이 따돌림을 더 당한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왕따’는 다른 나라와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외국에 비해 교내 동아리 활동이 적다는 게 왕따의 단초를 제공한다.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 학생은 상대적으로 동급생과 어울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학교가 앞장서 다양한 집단을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다.



 미술·스포츠·오케스트라 모임 등 집단을 다양화해 왕따를 당하는 아이도 단체활동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교사가 격려해 주고 개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도 왕따 근절을 위해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손 원장은 “왕따를 당했을 때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 상담기관을 설치하고, 사후대책·치료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관은 반드시 의료기관과 연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치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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