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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버린 타이타닉 선장, 승객 버린 이탈리아 선장

중앙일보 2012.01.16 00:29 종합 2면 지면보기
4229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호화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좌초한 이탈리아 서부 질리오섬 인근 해역에서 15일 소방헬기가 승객을 병원으로 긴급 후송하고 있다. [질리오섬 AP=연합뉴스]


승객과 선원 4229명을 태운 이탈리아 호화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지중해에서 전복됐다.

호화유람선 콩코르디아호 전복



선장 프란체스코 스케티노(52)와 선원들은 승객들이 배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 배를 포기하고 먼저 대피한 것으로 드러나 이탈리아 경찰에 체포됐다.



 13일 오후 9시(현지시간)쯤 이탈리아 라치오주(州) 치비타베키아 항구를 출발해 북부 사보나항으로 가던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티레니아해 토스카나 제도의 질리오섬 인근에서 암초와 충돌한 뒤 기울어지면서 전복됐다. 출발한 지 3시간 만이었다. 유람선에는 승객 3216명과 선원 1013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이 사고로 최소 3명이 숨졌고, 17명이 실종됐다. 부상자는 40여 명으로 이 가운데 2명은 위중하다. 배에는 승무원 2명을 포함해 34명의 한국인이 타고 있었지만 모두 안전하게 구조됐다고 외교통상부는 밝혔다. 특히 한국인 신혼부부 한 쌍이 배가 전복된 지 24시간 이상 지난 뒤 극적으로 구조되기도 했다. 현지 구조대는 밤새 이 유람선의 선실문을 두드리며 수색 작업을 벌이던 중 객실에서 나오는 희미한 목소리를 듣고 14일 밤 이들을 구해냈다. 둘 다 29세인 한기석·정혜진씨 부부는 건강 상태가 양호하지만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사고 발생 36시간 만에 이탈리아인 한 명도 구조됐다. 사고 당시 코스타 콩코르디아호는 원래 항로에서 약 4㎞ 벗어나 있었다고 미국 CNN 방송은 전했다.



 친구 부부와 함께 휴가여행에 나선 한국인 승객 김철수(49·회사원)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배를 떠나기 직전까지도 훈련 상황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질리오섬 인근 해상을 지나던 배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지만 별다른 안내 방송이 없어 그대로 식사를 마쳤다”며 “식사를 마치고 공연을 보던 중 선체가 긁히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어 잠시 정전이 됐고 전등이 깜빡거리면서 공연이 중단됐는데 ‘발전기에 잠시 문제가 생겼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나와 그대로 공연장에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연이 재개되지 않자 다른 승객들과 함께 객실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였다 깨어보니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기우는 일이 반복됐다고 한다. 김씨는 “잠시 후 ‘비상탈출 훈련을 위해 구명조끼를 들고 비상구로 빠져나오라’는 안내방송이 있었고 당시에는 이를 그대로 믿었다”며 “객실 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배는 70도 이상 기울어져 있었고 이때서야 실제 상황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 “구명보트를 탈 수 있는 갑판에 도착했을 때 ‘배를 버린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으며 이때부터 승객들이 울부짖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구명보트가 충분치 않아 1차로 승객들을 질리오섬에 내려주고 돌아온 보트에 두 번째로 타고 빠져나왔다”고 탈출경위를 밝혔다.



 한편 스케티노 선장은 승객들이 모두 대피하지 못했는데도 승무원들에게 모두 배를 떠나라고 이함 명령을 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스케티노 선장은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김씨는 “승객들이 아직 배에 많이 남아있는데 승무원 복장을 한 사람들이 구명보트를 타고 떠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승객들은 배가 기울어질 당시의 상황을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에 비교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1912년 4월 14~15일 타이타닉호가 북대서양에서 침몰한 지 꼭 100년 되는 해다. 타이타닉호의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는 당시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함께했다. 승객 조지아 아나니아스는 AP통신에 “갑자기 불이 꺼지면서 사방이 깜깜해지더니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며 “구명조끼에 달려 있는 섬광등 불빛만 보면서 복도를 필사적으로 기어올라갔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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