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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서 왕따 생기면 나타나는 이들 … ‘뉴스타트 운동’ 10인의 엄마들

중앙일보 2012.01.16 00:04 종합 8면 지면보기
퇴학 위기에 놓인 중·고교생 구하기에 나선 경북 경주 지역 어머니들이 13일 경주교육청에 모였다. 이날 어머니 10명 중 6명이 교육청의 담당장학사·전문상담교사와 함께 자리를 같이했다.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란희·조계현 회원, 정유선 전문상담교사, 류태순·장경자 회원, 이옥이 장학사, 표미숙·이계향 회원. [경주=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경주의 김모양은 고교 1학년이던 지난해 10월 학교를 그만뒀다. 극심한 왕따 피해 때문이었다.

학교 SOS 받고 아이들 만나
미술관·음악회 가며 말벗
작년 하반기 8명을 학교로



 그는 친했던 중학교 친구들과 떨어져 다른 고교로 진학한 탓에 1학기 내내 외톨이였다. 2학기가 되어서는 마음을 잡고 작은 선물 등을 건네며 친구 사귀기에 나섰다. 하지만 몇몇이 “너무 나댄다”며 오히려 따돌림을 시작했다. 곧 반 전체에서 왕따가 됐다. 마음이 통한다고 믿었던 친구마저 그 대열에 합류해 상처는 더 컸다.



 견디다 못한 김양은 “학교를 그만두겠다”며 2주 넘게 결석했다. 반 친구들은 위로는커녕 ‘네가 놔두고 간 책, 노트 꺼내 써도 되느냐’는 등 조롱 조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김양은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버린 그를 부모도, 학교 선생님도 어쩌지 못했다. 학교에서 ‘경주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상담 경력 10년 이상인 베테랑 주부들로 구성된 ‘위기 학생 구출반’이다. 상담 자원봉사자인 주부 권택영(44)씨가 나섰다. 중·고생 자녀를 둔 권씨는 김양에게 억지로 학교 복귀를 설득하는 대신 안압지, 반월성 등 경주 곳곳을 거닐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미술관도 찾고 음악회도 같이 갔다. 권씨는 “10여 차례 만난 뒤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양은 지금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학교 생활에선 어려움을 맛봤지만 이대로 주저앉진 않겠다는 각오란다.



 자원봉사자 김란희(50)씨는 지난달 경주지역의 중학교 2학년인 박모양을 만났다. 박양은 50일 가까이 결석했다. 이혼한 엄마가 재혼한 뒤 연락이 끊긴 데다 학교에도 정을 붙이지 못해서다. 울적할 땐 소주를 몇 병씩 마셨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자살도 시도했다. 이를 파악한 김씨는 수소문 끝에 그의 엄마를 찾아 만남을 주선했다. 모녀는 끌어안고 눈물을 쏟아냈고 서로를 위로했다. 박양의 표정은 밝아졌고 학교 생활도 다시 시작했다.



 ‘경주 엄마’ 10명이 위기에 빠진 중·고생 구출반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10년이 넘는 오랜 상담 경력을 지닌 이들은 학교에서 “○○ 학생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해당 학생을 전담해 상담을 맡는다. 이들의 목표는 자칫 낙오될 우려가 큰 아이들을 학교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학교로 복귀시킨 뒤 다시 출발하자는 취지로 ‘뉴스타트 운동(New Start)’으로 이름 붙였다. 지난해 하반기 학생 44명을 맡아 8명을 학교로 복귀시켰다. 18명은 계속 상담 중이다.



 ‘뉴스타트’의 아이디어는 지난해 초 경북교육청이 냈다. 경북은 한 해 중퇴생이 17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많다. 경북교육청 이제길(59) 장학관은 “아이들을 방치하면 그 자신은 물론 학교와 사회에도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며 “상담 경력이 풍부한 주부들이 아이들을 이끌어 학교로 복귀시키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 장학관은 “경북 내에서 경주가 ‘경주 엄마’들의 활약으로 가장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경주 엄마’ 모임의 조계현(53) 회장은 “사회가 아이들의 말에 가슴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게 학교폭력을 막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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