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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19) 김우중과 나 <3> 국가주의자의 전향

중앙일보 2012.01.16 00:00 종합 10면 지면보기
1981년 10월, 대우는 옥포 조선소를 준공하며 재계의 판도를 바꿀 발판을 만든다. 김우중 회장이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이헌재를 도와준 때도 이때쯤이다. 사진은 옥포 조선소 준공식에서 김 회장(왼쪽)과 전두환 대통령(가운데)이 크레인 가동 스위치를 누르는 모습. 오른쪽은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순자 여사. [중앙포토]



김우중 돈으로 하버드서 시장경제를 배우다

1981년 초, 최각규 전 부총리와 김재철 회장이 보스턴에 왔다.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의 최고경영자과정(AMP·Advanced Management Program)을 수강한다는 것이었다. 가끔 만나며 얘기를 듣는데 귀가 솔깃했다. ‘나도 비즈니스를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보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목표로 공부 중이었다. 그런데 영 재미가 없었다.



 유학생 신분으로는 AMP를 수강할 수 없다. 소속 기관의 추천이 있어야만 들을 수 있는 코스다. 그때 생각난 게 김우중 회장이었다. “말만 하면 도와주겠다”던 뉴욕 JFK 공항의 약속. ‘대우에서 추천해준다면….’ 장병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중에 (주)대우 사장이 돼 무너지는 대우를 끝까지 살리려고 병마와 싸워가며 몸을 던졌던 그 장병주다. 그는 당시 대우에 입사해 샌프란시스코 지사를 맡고 있었다.



 “하버드 AMP를 좀 들어볼까 하는데, 기관 추천이 필요하대요. 김 회장한테 얘기 좀 넣어 주소.”



 김 회장에게는 따로 편지를 써놓은 터였다. 장병주를 통해 편지를 읽어주십사 청을 넣은 것이다. ‘안 들어줘도 어쩔 수 없고….’ 하지만 한편으론 기대가 컸다. “도와주겠다”고 그렇게 철석같이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돌아가는 모양새가 이상했다. 대우에서 AMP 코스에 이미 세 명이나 임원을 추천해 놓았다는 것이다. 인기 있는 경영자 과정이었다. ‘너무 늦었구나…. 나까지 추천하기는 어렵겠다.’ 단념하려던 참에 장병주의 연락이 왔다. “김 회장이 추천해준답니다. 비용도 대주시고.” 14주에 2만5000달러 정도였다. 유학생이던 내겐 엄청난 비용이었다.



 보스턴은 진보주의의 본향, 미국 민주당의 본거지다. 독립 운동의 출발점인 ‘보스턴 티파티’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나는 큰 충격을 두 번 겪는다.



 첫 번째는 국가관의 변화다. 그때까지 난 철저한 국가주의자였다. 나라에 충성하고,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당연한 사명이라고 배우고 믿었다. 대학생 때는 치열하게 시위도 했지만, 다 국가가 잘돼야 한다는 사명감에서였다. 그래서 시위하다 공무원으로 180도 전환하는 데도 망설임이나 거리낌이 없었다. 국가에 봉사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었다.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는 것이 그때까지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보스턴은 달랐다. 그곳에선 ‘국민이 국가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국가보다 개인이 앞섰다. 개인주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사생활 침해는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한국인들보다 더 공동체 중심적인 것 같기도 했다. 애국심이 투철했고, ‘자율’이나 ‘책임 의식’을 강조했다.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내가 품고 살았던 국가주의란 건 지구 한쪽 끝 작은 나라의 집단 망상 같은 걸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이때의 경험은 천지개벽같이 내 가치관을 바꾼다.



 또 하나의 충격은 ‘시장의 발견’이다. 박정희 정권에서 공무원을 지낸 나는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정부라 생각했다. 미국에서, 특히 AMP를 수강하며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정부란 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10분의 1도 아니구나.’ 내겐 큰 발견이었다. 당시엔 ‘시장 경제’라는 단어가 유행하지 않았다. ‘경영’이라는 말도 국내에선 별로 쓰이지 않을 때였다. 나는 그 흐름을 ‘삶’이라고 혼자 불렀다. 기업이 움직여 생산을 하고, 개인이 소비를 해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것을 배웠다. 동시에 국적 없는 기업은 없다는 것과, 기업이 크려면 국가 경제가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강한 국가는 강한 정부와 다르다. 국민 경제가 강하려면 시스템과 인프라가 강해야 한다.” 82년 가을, 나는 보스턴 대학 경제학 박사 학위를 포기했다. 김우중 회장과의 또 한 번의 만남 때문이었다.



 그해 여름, 김우중 회장이 뉴욕에 온다는 전갈을 받고 나는 대우 뉴욕사무소를 찾았다. AMP 과정을 수강할 수 있게 해 준 데 대해 인사를 하고 싶었다. 김 회장이 일어서서 반겨주었다.



 “회장님 덕분에 좋은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 뭐 좀 배웠나.”



 “세상을 더 배워야겠다는 걸 배웠습니다.”



 “이제 뭘 할 생각인가.”



 “아직 뚜렷한 생각은 없습니다.”



 “나랑 같이 다니면서 세상을 보면 어떻겠는가.”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보스턴으로 돌아왔지만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 과목만 마치고 논문을 쓰면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그런데 때려치우기로 했다. 김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당장 11월 말부터 여행이 시작됐다.



등장인물



▶최각규(79) 전 경제부총리=재무부 출신 경제 관료. 1975년 농수산부 장관, 77년 상공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정계에 입문해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91년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를 역임.



▶김재철(77) 동원산업 회장= 23세 때 선원 생활을 시작해 3년 뒤 선장이 됐다. 1969년 자본금 1000만원으로 ‘동원산업’을 세웠다. 82년 참치 통조림을 출시하며 회사를 확장시켰다. 한국무역협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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