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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는 학교로부터

중앙일보 2012.01.16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간 학교폭력의 뉴스는 지난 연말과 연초에 걸쳐 온 국민을 우울하고 참담한 심경으로 몰아넣었다. 아이들을 마음놓고 학교에 보낼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단 말인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나라, 원조를 받다가 원조를 주게 된 나라. 이렇듯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자화상에 취한 것도 잠시, 성장기 유소년들을 빠른 속도로 비인간화에 물들게 하는 폭력이 우리 마을, 우리 학교에 만연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논평과 해설, 이에 대처하는 처방과 정책들은 연일 국민들 앞에 제시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를 인간화의 궤도로 진입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서 있는 오늘의 상황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기 이전의 한국 사회는 빈곤, 무지, 폭력, 비굴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집단적 노력과 투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자유는 얼마나 신장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상대적 빈곤의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지만 절대적 빈곤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대학을 포함한 학교 취학률이나 정보화시대에 참여하는 인구 비율은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며 무지가 자유의 걸림돌로 작동하는 시대도 이미 지나갔다. 올림픽과 월드컵, 그리고 한류의 확산 등을 거친 우리 국민 특히 젊은 세대들의 도전정신과 자신감은 과거와 달리 비굴의 늪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음이 확연하다. 그동안 한국사회가 안고 있던 빈곤, 무지, 비굴로부터의 자유는 괄목할 만한 신장을 보여준 반면,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는 지금 어떠한 현실에 처해 있는가.



 폭력이란 원초적으로 인간의 자유와 권리 및 존엄성을 가장 무자비한 방법으로 앗아가는 것을 말한다. 지난날 우리는 정치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던 시대를 지나왔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미래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의 하나로 학교폭력 난무가 꼽히고 있다. 학교폭력은 유소년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그리하여 자유로운 시민공동체의 미래를 원천적으로 저해하는 독소임에 틀림없다. 이를 방치하면서 어떻게 건전한 국가발전과 사회발전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미국사회에서의 계층 간 및 인종 간 빈부격차와 복지격차의 개선책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대학의 제임스 헤크먼(James Heckman) 교수는 지난여름 아산기념강연에서 사회발전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무엇보다 유소년 복지를 위한 투자에 절대적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기성세대에 대한 복지투자는 당장 눈에 보이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미래지향적 사회발전을 담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유소년 복지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확실한 사회발전, 즉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미래사회를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의 반값 등록금보다는 탁아교육시설에 우선 투자해 유소년의 바른 삶을 이끄는 것이 미래를 담보하는 현명한 선택이라는 그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학교폭력 즉 유소년들 사이에서의 폭력 문제는 학부모들뿐 아니라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나 국민을 대표한다는 정치인과 정당들의 학교폭력에 대한 입장표명은 매우 모호하거나 인색한 편이다. 이렇게 큰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 뚜렷한 해결책을 크게 외치며 공약으로 내세우는 정치인이나 정당, 특히 유력 후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학교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교사들이, 특히 교총이나 전교조에서는 앞장서서 적극적인 자세로 국민운동을 선도할 듯싶은데 이 역시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아 실망스럽다. 폭력의 문제라면 서슴지 않고 해결의 기수 역할을 자처하는 인권단체나 시민단체의 과도하게 신중한 모습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물론 학교폭력의 근원은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불균형과 한계성에 연계돼 있으므로 그 해결책이 쉽게 마련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폭력을 가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인간성과 공동체의 일원이란 시민의 자격을 포기하는 반인간적·반민족적 범죄행위임을 모든 국민이, 특히 자라나는 학생들이 공감해 깨칠 수 있도록 특단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2012년을 학교로부터 폭력이 추방되는 반폭력 운동의 시발점으로 삼아 미래 한국사회의 자유를 한층 더 신장시킬 수 있는 범국민적 행보를 시작해야 하겠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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