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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우리나라 중산층은 금융 문맹

중앙일보 2012.01.16 00:00 경제 12면 지면보기
박대혁
리딩투자증권 부회장
TV 저녁뉴스가 항상 대통령의 동정 보도로 시작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엔 그런 보도를 접하기 어렵다. 그만큼 정치적 민주화는 확고히 자리 잡았다.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영웅의 희생, 온 국민의 적극적 참여와 관심이 이뤄낸 결실이다. 세계적으로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민주화도 이뤄졌다. 헨리 포드로 시작된 자동차의 민주화, 빌 게이츠로 시작된 컴퓨터의 민주화가 한국에서도 이뤄졌다. 현재 국민 2.7명당 한 대의 차를 보유하고 있고, 컴퓨터가 없는 집이 별로 없지 않은가. 그런데 아직 민주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분야도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금융이다.



 민주화의 정도를 측정하는 데 세 가지 중요한 판단 기준이 있다. 첫째가 자유의 실현, 둘째가 평등의 보장, 셋째가 인도적 가치의 추구 여부다.



 국내에서 금융회사 설립은 엄격한 제한을 받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신규 은행의 설립이 전무하다. 금융회사의 활동 범위도 법에 규정된 것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 시스템(Positive system)이 채택돼 있다. 그런 규제환경을 보더라도 한국 금융은 자유의 실현 측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얻기 어렵다. 은행 간 경쟁이 극히 낮은 현재의 환경에서 은행은 굳이 리스크가 큰 계층을 대상으로 대출하지 않더라도 과점적 지위를 이용한 수수료 수입만으로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다. 한국 금융회사가 대기업과 부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에 치중하는 이유다. 그러니 한국 금융은 평등 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



 대부분의 금융회사는 대외적으로는 주주 이익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대주주의 이익을 위하거나, 아니면 경영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에 발생한 저축은행의 총체적 파멸만 보더라도 금융회사가 어떤 인도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세 가지 기준에서 모두 한국 금융의 민주화는 아직 요원한 상태에 있다. 그 결과 가계부채 위기로 저소득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중산층이 수백만 명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국민이 목숨 걸고 싸워서 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한 것은 결국 대다수 국민의 살림살이를 좋게 하자는 뜻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도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돈에 여유가 있는 사람과 돈이 필요한 사람을 잘 연결해 주고 일반 서민까지도 제대로 된 리스크 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국민이 공평한 경쟁의 기회를 누리며 공정한 시장의 룰에 의해 경제활동에 참여할 때 그 나라의 경제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국민이 태어나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듯이 대한국민 국민은 누구나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올바른 금융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러한 금융 민주화를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건강한 중산층이다. 중산층이 금융을 잘 알고, 금융 민주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선거를 통해 금융 민주화의 기초를 만들어낼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지도자도 뽑을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는 정치적 민주화는 정착돼 있다. 누구를 시키면 될지만 알면 될 일이다.



 하지만 국내 중산층은 금융에 대해 너무 모른다. 글 모르는 사람을 문맹이라고 하듯 금융을 모르는 사람은 ‘금맹’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한국은 ‘금맹국가’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카드 사태, 키코 사태, 펀드 사태, 깡통 보험, 주식워런트증권(ELW) 파문 등으로 계속 당하고만 있겠는가. 금융 지식 수준이 너무 낮아 금융회사의 자의 반 타의 반 횡포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 교육과 언론의 역할이 컸던 것처럼 금융 민주화에서도 교육과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 전체 시장에서 틀렸다고 판명된 경제이론을 버리고 새로운 경제이론을 찾아가는 학자가 나와야 한다. 유신체제하에서 저항하던 언론인도 그립다. 이제는 다 함께 금융 민주화를 위해 나설 때다. 신혼부부가 저리의 장기대출로 아담한 집을 손쉽게 장만할 수 있고, 정주영 키즈가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서민이 비자발적 실직이나 집값 폭락과 같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에 쉽게 가입할 수 있고, 적은 금액으로도 전 세계의 우량 투자처에 분산투자를 할 수 있으며, 소액주주가 대기업의 주주총회에 직접 참여해 올바른 경영자를 민주적으로 선출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박대혁 리딩투자증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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