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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권 ‘재스민 혁명’도 따지고 보면 기후변화 산물

중앙선데이 2012.01.14 23:43 253호 10면 지면보기
영국에는 ‘기후·에너지 안보대사(climate and energy security envoy)’라는 이름의 좀 특이한 대사가 있다. 기후와 에너지가 영국의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 국방부와 외무부가 2009년 함께 만든 것이다. 초대 대사엔 닐 모리세티(사진) 해군 중장이 임명됐다. 그는 전 세계를 돌며 기후변화가 각 나라의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모리세티 대사가 8~10일 서울을 방문해 청와대·외교통상부·국방부 당국자들과 기후 안보 문제를 논의했다. 10일 서울 정동 영국대사관저에서 김종혁 중앙SUNDAY 편집국장이 모리세티 대사를 만나 기후에 대한 관심을 안보 문제로까지 격상시킨 배경을 물었다.

세계 유일의 영국 기후안보대사 닐 모리세티

-‘기후 안보’라니, 이게 무슨 의미인가. 기후와 안보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기후 안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건 전 세계 모든 인류가 기후변화로 인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대적인 상대방이 존재하는) 전통적인 개념의 안보 위협과는 좀 다른 차원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지만 세계의 안정에 위협이 되고 있다. 물론 기후변화가 분쟁의 직접적인 불씨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기후변화는 분쟁의 2차적, 3차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기온이 상승하고 그로 인해 해수(海水)면이 올라가는 것은 인류의 생활에 영향을 준다. 기온이 섭씨 1도씩 오를 때마다 농작물의 작황이 10%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결과들이 모여 분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식량 부족은 국내외 인구 이동의 원인이 되고, 그로 인해 갈등과 분쟁이 발생한다. 현재는 주로 적도 주변 국가들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나머지 지역 국가들은 모른 척하고 싶은 유혹이 클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영국과 한국만 보더라도 외국과의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아닌가. 게다가 교역의 주요 아이템은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이다. 에너지가 없으면 생존이 안 된다. 따라서 기후변화는 군사적 측면보다 오히려 더 큰 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군 제독인 내가 기후안보 대사로 활동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지난해 태국에서 발생한 홍수 로 인해 영국의 자동차 업계가 타격을 받았던 것처럼, 세계 곳곳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건 해군 제독보다는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과거엔 외교관과 경제학자, 군인이 해야 할 일이 다 달랐다. 하지만 지금처럼 하나의 문제에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때엔 정부의 통합적 노력이 중요하다. 재무·경제·환경·에너지 등 각 정부 기관을 아우르며 책임을 지는 사람이 필요해졌다. 영국 정부가 기후안보와 에너지안보를 담당하는 대사직을 신설한 건 그래서다. 국내외 정부·학계·언론과 협력하며 기후안보위협 대응책을 논의하고 실천에 옮기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 중인 영국 부대가 1회용 배터리 대신 발전기를 사용하도록 조치하는 등 구체적 일에도 관여한다.”

-‘기후안보 대사’라는 직위 자체도 영국에만 있다던데 그런가.
“그렇다. 물론 다른 국가에도 기후변화를 담당하는 정부직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미국에서도 국방부 및 CIA에서 기후변화를 담당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그러나 여러 정부 부처를 아우르는 직을 만든 건 영국이 처음이다. 내가 초대 기후안보대사이고, 3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세계 곳곳을 많이 방문하는 터라 여권에 도장도 많이 찍고 있지만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해 화상 회의도 많이 한다(웃음).”

-기후가 안보에 위협이 된 구체적 사례를 들어달라.
“그린란드에서 빙하가 녹고 나일강이 메말라가는 것뿐 아니라 기상 이변도 세계 곳곳에서 더욱 빈번하고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아랍의 봄’을 일으켰던 중동 민주화 운동 역시 기후변화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진 게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아랍의 봄’? 그건 기후변화의 긍정적인 결과처럼 들린다.
“맞다. 우린 어쩌면 너무 부정적인 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변화는 위기를 가져오지만, 위기는 뒤집어보면 기회일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기후변화는 위협요소가 된다. 우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행동을 취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한국도 녹색 성장을 화두로 삼아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영국 정부 역시 수십억 달러의 막대한 예산을 들여 앞으로 수년간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환경이 곧 신성장동력이 된다는 거다. 물론 문제를 잘 인식하고 단기적·장기적 해결책을 찾는다면 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지만.”

-기후가 안보라면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가장 중요한 건 문제를 똑바로 인식하는 거다. 그 다음엔 정부 내 각 기관이 협력해서 발 빠른 대응책을 통합적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위협을 피할 수 없다면 잘 견뎌내고 이겨내야 한다. 회복력을 길러야 한다는 거다. 국내 정부기관 간 협력도 중요하지만 기후변화는 전 세계적 문제이므로 국가 간 협력이 중요한 열쇠다. 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영국 국방부·외무부 장관이 함께 추진 중인 ‘해외 안정성 구축(Building Stability Overseas)’ 프로젝트가 그 예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위협이 과장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두가 100% 동의할 수 있는 명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을 보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기후변화는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어서 당장 증거를 내놓기 어렵다. 우리가 기후변화의 위험을 증명하기 위해 서로 공방만 벌이는 사이에 문제는 더 커진다. 그 결과는 참혹한 재앙으로 나타날 것이다.”

-기후변화가 심한 곳에서 분쟁이 발생한다고 주장한 걸로 아는데 실제 그런가.
“(지도를 보여주며) 짙은 색상 부분이 기후변화가 극심한 곳이다. 이 지역의 많은 부분이 분쟁 지역과 겹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식량 수급 상황에 변화가 일어나면 사람들이 국경을 넘게 된다. 종교적·문화적 경계를 넘어 이주하면서 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지도에 표시된 지역 국가들은 대부분이 후진국이다. 그렇다면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원인 때문에 분쟁이 생긴다고 볼 수 있지 않나.
“기후변화가 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분쟁을 낳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국경을 초월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기후변화가 동북아 지역에 미칠 영향은 뭐라고 보나.
“온난화로 인해 작황이 나빠지면 식량 상황이 악화될 게 뻔하다. 나중엔 물 부족 상황까지 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주변국에서 난민들이 한국·중국으로 이주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농작물의 작황을 개선하기 위해 강의 물줄기를 바꾸거나 하는 식으로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동남아 지역에선 이미 그런 문제가 현실화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선 물이 부족해 국민이 인도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고 하더라.”

-한국의 이명박 정부도 녹색 성장을 얘기하지만 특히 개발도상국에선 녹색 성장에 대해 거부감이 적지 않은데 대책이 있나.
“사실은 녹색 성장은 긍정적 면이 많다.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녹색 성장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전 세계가 일자리 부족으로 고민하고 있지 않나. 지금은 오히려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시기라고 본다.”

-영국은 그런 면에서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나.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인프라 구축 등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건물을 재정비하면서 일자리도 늘어나고, 또 국민 개개인에게도 이득이 돌아가고 있다. 일단 난방비가 줄어들지 않는가.”

-중국과 같이 덩치가 큰 개발도상국과 녹색 성장 협력은 쉽지 않다. 게다가 지난해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사회 평화·안보 문제로 기후변화를 논의하자는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국제적 합의가 쉽지 않은데.
“녹색 성장 기술도 발전 중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점에서 낙관한다. 유엔 안보리도 안보리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게 적절치 않다는 것이지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은 게 아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수차례 강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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