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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괴롭혀 외국인 돕나

중앙선데이 2012.01.14 22:54 253호 30면 지면보기
친구들과 서울 명동을 걷다가 그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걸 발견했다. ‘외국인 전용(Foreigners Only)’이라고 적힌 택시였다. 한국인 친구들은 충격을 받았다. 나도 이 택시를 처음 봤을 때, 이런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충격을 받았다. 독자들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 보면 좋겠다. 직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퇴근길, 비까지 내린다. 겨우 택시를 잡았는데 택시기사가 말한다. “미안하지만 외국인이어야 탈 수 있습니다.” 기사들이 융통성을 발휘하길 바랄 따름이다.

슬프게도, 이런 괴상한 일들은 택시 말고도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한국 사람들을 괴롭힘으로써 외국인들에게 더 봉사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외국인 전용’으로 지정된 IBK기업은행의 이태원지점도 그렇다. 한국인 고객은 이젠 사절이다.

외국어로 발행되는 한국 언론매체들은 종종 가벼운 읽을거리로 서울시가 외국인 거주자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는지 소개한다. 기사를 보면 한국 정부나 유관기관들은 모든 종류의 가능한 서비스를 영어로 제공하려 온갖 고생을 다 한다. 한국인에겐 제공되지 않을 기나긴 설명을 한다. 내가 한국인이라면 분노가 치밀 것 같다.

다른 사람보다 대접을 더 받고 싶지도, 못 받고 싶지도 않다면 어쨌든 화가 날 일이다. 짜증이 나는 원인은 또 있다. ‘외국인 특별서비스’ 마인드의 기저엔 모든 외국인은 단지 여행객일 뿐이고 한국의 문화·언어에 대해 100% 무지할 거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요즘 서울의 번화가를 걷다 보면 빨간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말을 걸어온다. 여행안내소를 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인지, 자원봉사자들을 주요 거리에 배치해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모든 사람이 경복궁을 보러 가다 길을 잃었다는 가정하에 노동을 시키고 있는 셈이다.

서울에선 (서울시 정부 산하 SH공사가 아마 굉장한 비용을 들여 건설한) DMC빌의 외국인 전용 호화 아파트를 빌릴 수도 있고, 외국인 전용 택시를 타고 출근해 외국인 전용 은행 지점에서 ‘브라이언 김’ ‘에이미 리’와 같은 이름을 쓰는 직원들과 영어로만 얘기하며 살 수도 있다. 한국어는 한마디도 필요 없다.

이런 조치들은 외국인의 사회 참여에 대한 한국인의 기대심리를 낮추게 된다. 내가 기자로서 당연히 한국 정치에 대해 얘기하거나, 식당에서 한국어로 음식 주문을 하면 한국인들은 깜짝 놀란다. 나는 한국어를 훌륭하게 하는 편도 아닌데 말이다. 놀랄 만큼 한국어에 능숙한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들이 한국어로 말을 걸면 돌아오는 한국인의 답은 영어인 경우가 많다.

외국인을 위한 서비스는 정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동남아 출신 공장근로자나 베트남 출신 가정주부 등, 한국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은 이들은 아주 많다. 외국인 전용 택시나 호화 아파트는 솔직히, 이미 한국에서 많은 걸 얻어낸 서양 출신 사업가들을 위한 게 아닌가.

한마디 더. 최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교체 논란을 보며 착잡했다. 영국 출신이라면 다 알겠지만, 구단주나 기자들이 감독보다 축구단 운영법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독은 퍼진다. 영국의 축구팀 감독들은 일정한 경력의 궤도를 갖고 있다. 수십 년간 성공의 미끄러운 사다리를 올라가 영광의 짧은 순간을 맛본 후 수치스러운 퇴장을 빨리 맞이한다. 정치인과 아주 비슷하다. 중요한 차이는 정치는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지만 축구에선 감독이 독재자라는 점이다. 최고의 독재자를 고르는 건 선발위원회의 몫이다. 하지만 일단 선택했으면 다들 입을 다물어야 한다. 영국 대표팀이 훌륭한 선수진을 갖고도 독일 대표팀에 항상 고전하는 이유다.



다니엘 튜더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처음 방한했으며 지난해 6월부터 서울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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