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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흥행극, 축제인가 족쇄인가

중앙선데이 2012.01.14 22:52 253호 31면 지면보기
민주통합당의 전당대회(15일) 흥행몰이는 10년 전 역사의 재현극이다. 김대중 정부 말기에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을 기고 여당에 대한 불신은 하늘을 찔렀다. 그래서 정당 개혁을 명분으로 ‘개방형 국민경선’이라는 흥행몰이가 시작됐다. 그 결과 또한 드라마 같았다. ‘변방의 정치인’ 노무현이 민주당 대선 후보를 거머쥐더니 대통령에 당선됐다. 민주당이 당원들만으로 경선을 치렀다면 이런 ‘기적’을 낳을 리 만무했다. 더욱이 기존 정치권에서 세(勢)가 부족했던 노무현 후보에게 인터넷과 네티즌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천혜의 무기였다. 10년 뒤, 그 무기는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로 바뀌었다. 이 새로운 무기는 민심을 오밀조밀하게 엮어 기성 정치권을 위협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에는 무려 64만 명의 손님이 몰려들었다. 대다수는 모바일 투표 신청자다. 이 흥행극의 꽃으로 불리는 모바일 투표는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 정당을 개방해 유권자 참여의 문턱을 낮췄다. 그러면서 돈과 조직 동원에 병든 퇴행적 선거 관행에 제동이 걸릴 소지가 커졌다. 공직후보 공천을 볼모 삼아 음지에서 떼로 몰려다니는 계파의 조직 동원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수십만 명의 유권자들이 모바일을 통해 관심과 지지와 비판을 분출하는 광경은 생생한 참여민주주의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지 않다. 우선 모바일 국민경선은 정당의 실체를 선거 머신(electoral machine)으로 격하시킬 수 있다. 지난 10년간 정당 경선에서 정보통신 기기와 국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졌지만 과연 정당의 체질이 개혁됐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오히려 정치 이벤트가 체질화되고 정당은 선거용 부품으로 왜소해졌다. 당원의 권리와 정당의 정체성이 상실되고 주객이 뒤바뀐 잔치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민경선인단의 연령, 지역 대표성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경선인단의 44%가 20~30대이고, 59%가 수도권 거주자다. 공직선거에서 실제 나타나는 유권자의 인구통계학적 비율과는 동떨어진 수치다. 자칫 표심의 왜곡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더욱이 임의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모바일 투표는 매표나 해킹 같은 선거 부정의 소지를 안고 있다.

모바일 투표는 명과 암을 가지고 있다. 빛을 키우고 그림자를 지우는 혜안이 필요하다. 모바일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 중요한 것은 모바일이 전달하는 유권자의 마음이다.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도구를 맹신하지 말고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이벤트 효과에 경도되지 않도록 인물·정책에 대한 선호를 동시에 묻는 방식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가령 모바일 투표와 함께 모바일 매니페스토 캠페인을 함께 추진할 수 있다. 주요 정책·공약에 대한 후보별 견해와 구체적 실천 약속을 국민선거인단이 공유하고 대조하는 것이다. 모바일 사이트나 앱, 그리고 문자메시지 등이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둘째, 당원의 표 가치와 국민선거인단의 인구통계학적 비율을 합리적 수준으로 보정하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 진성당원은 정당의 중추인데, 이들에 대한 홀대는 결국 사기 저하와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정당의 대표라면 당심과 민심의 지지를 골고루 받아야 한다. 당원의 표 가치를 상향 조정해 정당의 정체성과 당원의 권리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한다. 국민선거인단도 무작정 숫자만 늘릴 게 아니다. 공직선거 투표율에 준해 연령·지역별 투표율을 조정할 때 민심의 왜곡을 줄일 수 있다.

셋째, 투표의 민주적 과정을 실현할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모바일 투표는 4대 투표원칙과 상충되며 부정행위의 소지도 적지 않다. 이에 연루된 후보와 유권자가 적발될 경우 제도적으로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해야 한다. 그리고 해킹 등 외부세력의 방해를 차단하기 위한 기술적 대응책과 유관 기관과의 공조를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바일 투표에서 본인 인증을 강화할 절차와 솔루션을 더욱 고민해야 할 것이다.

모바일 흥행극은 오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러나 그 명암은 여전히 교차하고 있다. 이 도구를 잘 다듬는다면 앞으로 정당과 유권자는 더 멋진 축제를 열겠지만 잘못될 경우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



장우영 건국대 정치학 박사. 한국정당학회 연구이사,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분석지원위원을 역임했다. ‘인터넷과 선거캠페인’ ‘소셜네트워크와 선거정치’ ‘선거와 인터넷 규제’ 등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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