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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팔자 다산이

중앙선데이 2012.01.14 21:22 253호 39면 지면보기
다산이가 늘어졌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집 앞뒤로 다니며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지만 볕 좋은 날에는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퍼져 잘도 잡니다. 다산이는 집사람의 애정과 애증을 한 몸에 받은 지 9년이나 된 풍산개입니다. 제가 ‘무자식 상팔자’의 경계는 뛰어넘었으나, ‘개 팔자가 상팔자’의 높은 경계는 아직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다산이는 그동안 적시에, 아주 적절하게 우아함을 놓치지 않은 비굴한 표정과 고매함을 놓치지 않는 꼬리 짓으로 뭇사람을 홀렸습니다.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그러나 이렇게 예쁜 개도 개는 갭니다. 얼마 전 산에서 고라니를 잡아 집까지 물고 왔습니다.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산에서 집까지 끌고 온 것 하며, 모가지를 물고 몇 번 패대기친 흔적 하며, 제집에 꾸역꾸역 사체를 집어넣은 것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야생의 본능을 잃지 않고 일을 처리했습니다. 우리에게 칭찬받으려는 행동이니 야단도 못 쳤습니다. 고라니는 다산이 모르게 뒷산에 묻었습니다. 거침없이 살아가는 다산이는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개입니다.
‘개만큼만 하면 성불한답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 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중정다원’을 운영하며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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