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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해수 만나는 나주,무안産 최고,명나라 사신의 채식 상차림에 올려

중앙선데이 2012.01.14 19:36 253호 28면 지면보기
오색산삼 :찹쌀가루에 소금을 넣고 체에 내려 익반죽한다. 반죽을 나눈 뒤 각각 감태가루, 다진 잣가루, 우려낸 치자물, 백련초 가루를 탄 끓는 물 등을 넣고 익반죽한다. 길이 6cm 정도의 원통형으로 산삼을 빚는다. 지지듯 튀겨내 꿀에 재웠다 쇠그물망에 올려 꿀을 제거한 뒤 잣가루를 뿌린다.
조미해 완성한 즉석 김은 누구나 즐긴다. 그런데 김과 비슷한 감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김은 해태(海苔)라고도 부르는 홍조류(紅藻類)다. 반면에 감태는 청태(靑苔)라 하고 녹조류(綠藻類)다. 태(苔)란 ‘이끼’를 뜻하니 김이든 감태든 바다에서 이끼처럼 돋아나는 해조류인 셈이다.감태는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오는, 반염수(半鹽水)의 영양이 풍부한 연안 바위 위에 착생해 12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급속히 자란다. 그래서 허균도 『도문대작』(1611)에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전라도의 함평·무안·나주산이 극히 좋고 단맛이 엿과 같다”고 했다. 감태는 자연군락을 이루고 있는 서식지에서 4~6회가량 수시로 채취된다. 봄이 되면 황색으로 퇴색하기 때문에 겨울이 제철이다. 현지에서는 생으로 양념을 넣어 무쳐 먹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담수(淡水)로 씻어 깨끗이 다듬은 뒤 모양을 얇고 네모지게 반반하도록 만들어 햇볕에 말리거나(『규합총서』, 1815) 원형 그대로 말린다.

김상보의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알아보는 ‘제철 수라상’ <7> 감태

이렇게 말린 감태의 주성분은 탄수화물이 54%, 단백질이 18% 함유돼 있다. 칼슘·인·철·나트륨·칼륨 등의 무기질 외에 몸속에 들어가서 비타민 A로 변하는 β카로틴 및 비타민 B₁·B₂·니아신과 비타민 C도 많이 들어 있다.조선왕조에서 민호(民戶)에게 부과한 감태 진공(進貢)은 강진·광양·나주·낙안·무안·무장·보성·부안·영암·장흥·진도·해남으로 전라도에 국한하고 있다(『여지도서(輿地圖書)』, 1757). 이는 『도문대작』에서 언급한 바와 일치한다. 시간을 400여 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1609년(광해군 원년) 명나라 황제 신종(재위 1572~1620)은 전년도에 돌아가신 선조에게 시호(諡號·선왕의 공덕을 칭송해 추증하는 이름)를 주기 위해 사신을 보냈다. 이들은 4월 25일 경성에 들어와 5월 6일 돌아갔다. 이들이 12일 동안 먹은 식품 중에 감태가 들어 있었다. 시기로 보아 햇볕에 말린 건감태다.

이 명나라 사신들은 특별히 사제천사(賜祭天使·천사는 천국에서 온 사자라는 뜻. 천국은 명나라를 가리킴)란 직함을 갖고 왔다. 조선 정부는 사신들이 모화관(慕華館·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숙소. 지금의 서대문 밖 독립문 자리에 위치했음)에 머무르는 동안 이들의 특별함을 감안해 육류를 일절 배제했다. 감태를 포함하는 소물(素物)만 사용해서 만든 소선(素膳·膳은 ‘반찬 선’)을 제공했다.

감태로 만든 소선은 크게 두 종류의 조리법이 사용됐다. 하나는 네모지게 반반하도록 말려 만든 건감태를 가위로 적당한 크기로 잘라 기름에 튀겨내는 방법이다(『규합총서』, 1815). 당시 이렇게 튀겨내는 것은 산사(山寺·절) 음식의 주종으로 전승돼 내려오는 것이라 했다.

“소식가(素食家)는 기름에 지지거나 볶는 요리법을 갖고 있으며 여기에 갖은 양념을 화합해 먹으면 나름대로 각별한 맛이 있다. 이것은 산가(山家)에서 맑게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귀하고 검소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자반(佐盤)이라 한다”(『옹희잡지』, 1800년대 초).

다른 하나는 건감태를 가루로 만들어 과자나 떡을 만들 때 약미(藥味)로서 주재료에 넣는 것이다. 이 역시 소선의 범주에 들어간다. 찹쌀가루에 감태가루를 넣고 끓는 물을 넣어 반죽해 산삼 모양으로 빚어낸다. 이를 참기름에 튀겨 꿀에 집청한 다음 잣가루 고물을 입힌 것이 감태산삼(甘苔山蔘)이다.

조선왕조는 찹쌀가루로 산삼을 만들 때 감태가루 외에도 잣·연지·치자를 넣고 만들어 이를 각각 연산삼·홍산삼·황산삼이라고 했다. 또 약미를 넣지 않고 찹쌀가루만으로 만든 것을 산삼이라 하면서 이들 다섯 종을 각색산삼(各色山蔘)이라 불렀다. 연지·치자 등을 넣고 만든 이들을 먹으면 산삼을 먹은 것과 진배없다는 뜻에서 오색산삼이란 명칭을 붙였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 치충(痔蟲·요충)을 죽이고 토사곽란으로 인해 가슴이 답답한 병증을 다스리는 감태의 성질을 십분 활용한 것이 감태산삼이 아닐까 한다.

1795년(정조 19) 혜경궁 홍씨(정조대왕의 어머님)의 환갑잔치 때에 등장했던 감태산삼을 포함하는 오색산삼은 그후에는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생강을 넣은 생강산삼이 1829년에, 감태산삼과 연산삼이 1827년과 1828년 진연(進宴) 때에 올랐다.어찌 되었든 광해군 원년 명나라 사신 접대 당시에도 건감태는 자반 형태 또는 산삼류 형태의 찬품(饌品)으로 변신해 상차림을 장식했을 것이다. 이들 양자는 불교 전래 이후 살생 금지 사상과 더불어 발전한 정진(精進·어육을 금하고 채식함. 몸을 깨끗이 해 마음을 가다듬는 것) 음식의 하나가 되어 더욱 발달했다.


한양대 식품영양학 박사.『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한국의 음식생활문화사』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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