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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돌토돌 133개 돌기, 변치않는 고미노

중앙선데이 2012.01.14 19:28 253호 26면 지면보기
원래 ‘럭셔리’는 일상의 것이 아니었다. 값지고 좋은 건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둘 것이었다. ‘실용적이면서 우아하고, 편하고도 품위 있는’ 식의 표현은 모순이었다. 토즈(TOD’S)는 이처럼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을 한데 모았다. 현재 토즈 그룹을 이끌고 있는 디에고 델라 발레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우리는 ‘유행의 희생자(fashion victim·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데도 최신 유행을 따르는 사람)’를 위한 브랜드가 아니다. 우리의 제품은 일상생활에서 실용적 럭셔리를 추구하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다.”

브랜드 시그너처 <7> TOD'S

토즈의 지분 대부분을 소유한 델라 발레 집안은 1900년대 초부터 이탈리아 북동부에서 신발을 만들었다. 100년 가까이 이어온 가업이라지만, 사실상 오늘날 토즈는 델라 발레 회장이 만들었다. 그는 이탈리아 장인정신에 미국의 실용성을 더해 토즈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미국 동부 상류층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받아 그들의 클래식하고 편안한 주말 옷차림에서 ‘럭셔리 캐주얼’ 컨셉트를 착안 했다. 특히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흠모했다. 그의 요트 ‘말린(marlin)’을 사고, 토즈의 신발에 ‘말린 하이애니스포트(Malrin Hyannisport·하이애니스포트는 케네디 대통령의 출생지다)’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미국적 감성을 심었다.

이탈리아 브랜드면서 미국적인 토즈의 아이콘이 된 고미노(Gommino)도 미국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델라 발레 회장이 뉴욕 여행 중 백화점에서 드라이빙 슈즈라는 걸 발견한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만든, 그렇고 그런 싸구려였지만 알갱이가 달라붙은 밑창이 관심을 끌었다. 그는 신발을 이탈리아로 들고 가 재해석했다. 소재는 최고급 가죽으로 바꿨고, 자르고 꿰매는 전 과정을 장인이 꼼꼼하게 다루도록 했다. 고무 밑창엔 조약돌(pebble)을 박은 것처럼 오돌토돌한 133개의 돌기를 만들어 미끄럼을 방지했다. 장갑처럼 발에 꼭 맞는 신발은 편안했다. 운전을 할 때나, 쇼핑을 할 때나 오래 신을 수 있었다. 모카신 스타일의 디자인은 정장이나 캐주얼에 두루 어울렸다.

품질도 좋았지만, 고미노가 인기를 끈 데는 델라 발레 회장의 ‘셀레브리티 마케팅’ 덕이 컸다. 그는 이 신발을 피아트의 창업주인 지아니 아그넬리 회장에게 선물했다. 당시 ‘이탈리아의 제왕’으로 불리던 거물이다. 2007년 남성지 ‘에스콰이어’가 역사상 가장 옷 잘 입는 남자로 선정한 최고 멋쟁이였고, 사후(死後)에 알려졌지만 재클린 케네디와도 밀회를 즐겼던 플레이보이였다. 그는 고미노를 신고 인터뷰에 나타났고, 자신이 소유한 축구단 유벤투스의 경기를 관람했다. 스키 사고로 다리를 다쳤을 때도 고미노를 신었다. 그의 다친 다리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때 고미노는 수도 없이 대중에게 노출됐다. 덕분에 고미노는 단숨에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브랜드엔 아직 이름이 없었다. 고미노가 인기를 끌자 델라 발레 회장은 그제야 이름 짓기에 나섰다. 그는 독특한 방식을 택했다. 회사 이름을 짓기 위해 미국 보스턴 지역의 전화번호부를 펼친 것이다. 수많은 이름 중에서 그가 골라낸 것이 ‘J.P. 토즈’였다(J.P.라는 이니셜은 90년대 후반에 떼어 냈다).‘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고집하는 브랜드에는 어울리지 않을 법도 하지만 기억하기 쉬우면서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난해 고미노는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하나의 컬렉션으로 발전한 것이다. 로고 문양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다른 브랜드처럼 토즈의 상징을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 고미노 밑창의 무늬를 형상화한 것이다. 핸드백·지갑·파우치 등 액세서리의 가죽 표면에는 신발 밑창을 보는 것 같이 동글동글 무늬가 입체적으로 새겨졌다. 이 컬렉션의 이름은 ‘시그너처’. 고미노가 공식적으로 ‘시그너처’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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