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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연인의 이름은 경아 ...”손발 오글오글 ‘겨울 이야기’

중앙선데이 2012.01.14 19:07 253호 17면 지면보기
이장희의 ‘겨울이야기’가 수록된 옴니버스 음반과 영화 ‘겨울여자’의 OST 앨범. 사진 가요114 제공
오랫동안 인류에 겨울은 휴식·정지·죽음 등의 의미였다. 그래서 민요 같은 서민들의 노래에서 겨울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대중가요도 오랫동안 겨울을 노래하지 않았다. 그런데 1970년대 포크의 시대가 열리면서 겨울은 노래 속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영미의 7080 노래방 <41> 겨울의 발견

그건 마치 비에 대한 노래가 갑자기 나타난 것과 흡사했다. 비나 겨울처럼 우중충하고 춥고 괴로운 환경을 구태여 노래할 일이 없다는 것이 그 이전 대중가요의 태도였다면, 70년대 청년문화 세대들은 이런 태도를 뒤엎어버렸다. 사월과오월이 부른 “손이 시려워 발이 시려워 겨울바람 때문에” 하는 ‘겨울바람’처럼 추운 겨울을 천진스럽고 신나게 맞이하는 노래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세대가 어린아이 같은 철없는 심성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눈을 좋아하는 건 철없는 아이들과 강아지뿐이다. 군대만 갔다 와도 눈이 끔찍해지지 않는가. 이 세대는 이런 천진함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겨울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추운 겨울 거리에 팽개쳐진 가엾은 작은 새라고 생각했다. 겨울의 새로운 발견인 셈이다.

이 시대 겨울 노래 중 압권은 이장희의 토크송 ‘겨울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 듣고 있노라면 손발이 심히 오글거리지만, 꾹 참고 한두 대목 감상해 보자.
“제 연인의 이름은 경아였습니다. 나는 언제든 경아가 아이스크림 먹는 것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제가 경아의 화난 표정을 본 적이 있을까요? 경아는 언제든 저를 보면 유충처럼 하얗게 웃었습니다. (중략) 우리가 만난 것은 이른 겨울이었고 우리가 헤어진 것은 늦은 겨울이었으니 우리는 발가벗은 두 나목처럼 온통 겨울에 열린 쓸쓸한 파시장을 종일토록 헤매인 두 마리의 길 잃은 오리새끼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모두 봄이건 여름이건 가을이건 겨울이건 언제든 추워하던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따스한 봄이라는 것은 기차를 타고 가서 저 이름 모를 역에 내렸을 때나 맞을 수 있는 요원한 것이었습니다. (하략)”(이장희의 ‘겨울 이야기’, 1971, 이장희 작사·작곡)

‘최인호스러운’ 이름 ‘경아’부터 ‘유충처럼 하얗게 웃었습니다’ 같은 기발한 감각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한데, ‘두 마리 길 잃은 오리새끼’쯤에 이르면 정말 손발이 겨드랑이에 올라가 붙을 것만 같다. 개그맨 정광태의 첫 히트 레퍼토리가, 이 노래를 “제 연인의 이름은 한심이었습니다. 나는 언젠가 한심이의 주근깨를 보며…”로 패러디한 ‘한심이 이야기’였으니, 당시에도 이 오글거림을 못 견딘 사람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1. 봄에도 우린 겨울을 말했죠 우리들의 겨울은 봄 속에도 남아 있다고/ 여름에도 우린 말했죠 우리들의 겨울은 한여름에도 눈을 내리죠/ 가을에도 우린 겨울 얘기를 했죠 우리들의 겨울은 가을에 벌써 다가왔다고/ 겨울엔 우린 겨울을 모르죠 우리들의 겨울은 너무나 추운 생각뿐이죠/ (중략) / 겨울엔 그러나 사랑이 있죠 우리들의 겨울을 녹여줄 수 있는 사랑이 있죠.”(김세화·이영식의 ‘겨울 이야기’, 1977, 조해일 작사, 정성조 작곡)

이 노래는 조해일의 소설을 영화화한 ‘겨울여자’의 삽입곡이다. 포스터 속에서 희한한 느낌으로 웃는 장미희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겨울이라는 설정이 있어야만 자신들의 순수한 사랑은 더욱 뜨겁게 빛나기라도 할 것처럼, 이 세대는 겨울에 집착했다. 다소 센티멘털하게 포장되어 있었지만, 이들에게 겨울이란 일종의 상황인식의 틀이었다. 이들은 이 겨울을 맨몸으로 버티고 봄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람 씽씽 부는 추운 날에도 살펴보자 살펴보자/ 봄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지금은 찬바람 속에 추운 나무 한 그루/ 외롭게 서 있네/ 흰 눈 펄펄 날리는 겨울날에도 귀 기울이자 귀 기울이자/ 봄이 어디서 숨쉬고 있는지/ 지금은 흰 눈 속에 추운 나무 한 그루/ 외롭게 서 있네/ 나는 그 나무에게로 달려가고 싶지만/ 어머니가 말려도 밖은 춥다고/ (중략) / 너의 손과 나의 손을 마주 잡고/ 힘찬 휘파람 불며 나서 보자.”(노래를찾는사람들의 ‘바람 씽씽’, 1984, 한동헌 작사·작곡)

80년 즈음 서울대 노래동아리 메아리 회원이던 한동헌(김광석이 부른 ‘나의 노래’의 창작자이기도 하다)이 만들어 부르다가 84년 노찾사 1집에 실려 널리 알려진 곡이다. 김민기나 한대수 같은 비판적 포크를 지향하던 이들이, 겨울에서 감상주의를 떼어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추운 바깥으로 과감히 나가 겨울나무와 함께 봄을 재촉해야 하는데 “어머니가 말”린단다. 이 시절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데모라도 할까 봐 늘 걱정이셨다. 이 솔직한 표현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 대중가요 관련 저서로『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광화문 연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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