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과 별 사이 어딘가에서 색점 총총히 찍고 있을까

중앙선데이 2012.01.14 17:29 253호 9면 지면보기
김환기 초상, 사진작가 임응식,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항아리와 매화'(1954), Oil on Canvas, 45.5*53㎝
이번 김환기 전시는 2010년 박수근, 2011년 장욱진에 이은 갤러리현대의 세 번째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전’이다. 출품된 70여 점 대부분은 개인소장가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일반인은 볼 기회가 많지 않은 작품들이다. 2004년 환기미술관에서 있었던 김환기 30주년 기념 전시 이후 8년 만의 개인전으로, 30년대 중반부터 작고한 74년까지 40여 년간의 화업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준다. 접근성이 뛰어난 사간동에서의 대규모 전시는 김환기를 ‘국민 작가’로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앞으로 옥션의 ‘블루칩’ 작가로서의 진일보한 상승세도 점칠 수 있다. 거장에 대한 예우를 갖춘 360쪽에 달하는 두꺼운 국·영문판 도록도 발간됐다. 내년 2013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리 열린 것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할 일을 상업 화랑에서 미리 당겨서 한 셈이다. 단 도록의 글들이 기존의 글들을 재수록한 것으로 학술적인 측면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갤러리현대 ‘김환기’전을 보고

1913년 전남 신안군 기좌도 부농의 집안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박수근·이중섭·장욱진 등과 더불어 한국 근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나는 궁금증이 생겼다. 박수근·이중섭·장욱진의 그림들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등 격동의 역사를 살아온 민중들의 정서를 담아낸, 뼈에 사무치는 애틋한 그림들이다. 그런데 왜 같은 시대를 살았던 김환기의 작품들에는 이런 힘들었던 시절의 흔적이 별로 없는 것일까? 박수근·이중섭·장욱진은 구상회화로 일관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왜 김환기의 작품은 추상화로 변화해 갔을까? 물론 답은 작품 속에 다 있다. 그리고 환기미술관에서 각각 2005년 발간한 김환기 에세이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그의 부인 김향안의 에세이집 『월하의 마음』에서도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코리아는 예술의 노다지”
김환기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한국의 자연과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다. 잘 알려진 대로 백자 항아리를 포함한 전통문화에 대한 김환기의 사랑은 극진했고, 보는 안목도 상당했다. 이것은 단순한 호사 취미가 아니었다. 그 속에서 김환기는 우리 민족이 일찍이 도달했던 아름다움의 깊이를 보았다. “코르뷔지에 건축 또는 정원에다 우리 조선조 자기를 놓고 보면 얼마나 어울리겠소”라는 그의 말처럼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자부심의 원천이자, 도달해야 할 미의 기준점이었다.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그의 유명한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1 39피난열차39(1951), Oil on Canvas, 37*53㎝ 2. 39달과 매화39(1961), Oil on Board, 23*40㎝
‘사방탁자’ ‘매화와 항아리’ ‘영원한 것들’ 같은 작품에는 백자 항아리, 십장생, 산월, 매화 등 전통문화의 다양한 아이콘들이 등장한다. 1956년 파리에 가기 전까지 김환기는 이런 전통적인 아이콘들을 서양화 화풍으로 옮겨 그리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후 변화를 겪게 되는데, 파리 시절에 그려진 작품 ‘산’은 동양 산수화의 구성원리를 재해석한 것이다. 더 이상 표면적인 아이콘의 나열이 아니라 작품 구성의 원리가 중요시됨으로써 그의 작품은 추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결정적인 전환은 70년대 뉴욕에서 그려진 전면점화(全面點畵)에서 이루어진다.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처럼 무수히 많은 점이 찍힌 큰 화면은 ‘거대(巨大)와 미소(微小)가 하나의 공간 속에서 숨쉬고 있는’ 우주의 풍경이다. 한국적인 미학은 이제 추상적인 상징의 원리로 내재화되었다.
전통색인 오방색에 대한 실험도 다양하게 행해진다. 특히 김환기의 푸른색을 보면서 사람들은 깊은 동해의 물색과 유현한 하늘을 떠올린다. 종이에 번지는 운연(雲煙)의 효과를 내면서 점을 찍는 방식은 김환기가 서양화의 재료를 동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점화는 김환기의 대표작으로, 그의 긴 예술적 여정의 종착역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수준의 작품들이다.

3 39산39(1958), Oil on Canvas, 73*50㎝ 4 39무제23-XII-71#21839(1971), Oil on Cotton, 211*291㎝5 39무제03-II-72 #22039(1972), Oil on Cotton, 254*201㎝6 39무제39(1969), Oil on Cotton, 77*63㎝7 39무제04-VI-71 #20539(1971), Oil on Cotton, 235*127㎝
김환기는 “코리아는 예술의 노다지”이며 “우리 민족뿐 아니라 이제 전 세계 예술은 그 주제가 우리 코리아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 말을 한 것은 53년의 어수선한 시점이었으나, 빈궁한 현실은 그에게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일만이 유일한 문제였다. 그의 말대로 “내일로 행하는 정신은 태양처럼 밝고 강한 것”이며, “화가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낙천가”였다. 특히 김환기 자신이 그랬다. 전통문화라는 든든한 곳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낙천가가 될 수 있었다. 한국적인 미에 대한 추구는 김환기의 작품이 시대의 우울에서 비켜갈 수 있었던 이유이자, 동시에 추상화로 변화해 나갈 수 있었던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지천명 나이에 뉴욕으로
현재보다 내일이 더 중요했던 김환기는 한국 미술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30년대 말 국내 최초의 화랑인 ‘종로화랑’을 개설하고, 최초의 근대미술 유파인 ‘신사실파’를 결성했으며, 63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를 주도했다. 홍익대 학장직을 맡을 때도 그의 머릿속에는 “세계적인 대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구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미술행정가 이전에 무엇보다 작가였고, 작품의 완성이 가장 중요했다. 프랑스·미국으로 이어지는 김환기의 끊임없는 해외 진출도 이런 생각과 관련이 있다. 그는 56년 마흔이 넘은 나이에 파리로, 63년 쉰의 나이에 뉴욕으로 떠났다. 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해 ‘회화 부문 명예상’을 수상하는데, 이를 계기로 뉴욕으로 떠난 김환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좁은 한국 화단이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겨루어보고 싶은 야망과 자신감이 있었기에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생활을 버리고 모험을 찾아 떠난 것이었다.

그가 뉴욕에서 쓴 일기들은 숨이 가쁘다. 숨돌릴 틈 없이 작업이 이어졌다. “미술은 질서와 균형이다”라는 깨달음 속에서,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드로잉을 포함한 3000여 점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74년 7월 뉴욕의 병원에서 그는 눈을 감는다. 이듬해인 75년 포인덱스터 화랑에서 추모기념전이 열렸다. 그는 지금도 미국에 있다. 뉴욕 허드슨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너른 터에 그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부인 김향안은 김환기 사후 환기재단을 설립해 열정적으로 작품을 정리해 소개했다. 92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열었다.

이상·김환기 두 천재의 아내, 김향안
김환기가 굳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평생의 지지자인 김향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경성은 김향안에 대해 “수필가이기도 한 김향안은 어느 쪽이냐 하면 차가운 성질의 소유자”라고 표현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김환기에게만은 최고의 아내였다. 그녀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고, 말이 통하는 친구이며, 사무적 수완을 갖춘 훌륭한 비서였고 통역관이었다. 김환기의 에세이에는 김향안에 대한 애틋한 묘사가 나온다. “아내는 먹을 것이 있든 없든 항상 명랑하고 깨끗하다. 아내는 낙천가다. 아내는 나에게 지지 않게 목공예품들의 고완품을 좋아한다… 나는 생활에 있어서나 그림에 있어서나 아내의 비판을 정직하게 듣는다.”

그 가난했던 시절, 예술만 아는 예술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다. 그러나 김향안의 수필집 『월하의 마음』에는 그늘이 없다. 씩씩하고, 긍정적이고, 김환기 말대로 ‘낙천적’인 마음 씀씀이를 볼 수 있다. 이 책의 말미에는 김향안의 본명인 변동림이 다시 등장한다. 한때 시인 이상(李箱)의 아내였던 변동림은 반세기 만의 침묵을 깨고, 이상의 소설은 상상의 산물일 뿐 이상과 자신의 결혼생활과 이상이 쓴 소설과는 별개라고 해명한다. 이상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내의 이미지가 그에게 오버랩되면서 진실이 왜곡되었다고 생각했던 탓이다.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이상은 안타깝게 요절했고 젊은 과부 변동림은 세 아이가 딸린 이혼남 김환기와 다시 인연을 맺어 김향안이 되었다. 이상과 김환기, 시대의 두 거물과 깊은 인연이 있었던 작은 여인 김향안(변동림).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고 있을까?



이진숙씨는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 작품에서 느낀 감동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러시아 미술사』『미술의 빅뱅』의 저자.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