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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을 키운 말 … 네가 싫은 일, 남 시키지 마라

중앙일보 2012.01.14 03:00 종합 10면 지면보기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오른쪽)이 1980년대 초 아버지 시중쉰 전 국무원 부총리와 함께 찍은 사진. 시진핑은 아버지로부터 단결을 중시하는 가정교육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푸핑현=장세정 특파원]
지난해 11월 2일 베이징시는 ‘베이징 정신’을 발표했다. 애국·창신(創新·혁신)·포용·후덕(厚德)의 4대 정신이다. 베이징시는 한 달 후 이 정신에 관한 춘롄(春聯·중국 설날 춘절에 대문에 내거는 글귀) 공모도 시작했다. “당선자 20명에게 5000위안(약 90만원) 상당의 상품을 주겠다”고 했다. 한 중국인 지인은 “시진핑(習近平·59) 국가부주석이 가장 강조해온 가치가 덕”이라며 “시진핑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시진핑의 길’에서 한·중관계 미래를 묻다 ③ 마음에 새긴 덕의 리더십

시진핑은 2010년 10월 당중앙 군사위 부주석에 오르면서 차기 지도자로 사실상 확정됐다. 덕은 시진핑 리더십의 키워드다. 그 스스로도 2004년 공산당 잡지 ‘구시(求是)’에 기고한 글에서 관리의 덕(官德)을 강조한 적이 있다.



 2000년엔 잡지 ‘중화자녀’와의 인터뷰에서 초한지(楚漢志)의 유방(劉邦·BC 256∼195), 삼국지(三國志)의 유비(劉備·AD 161∼223), 수호지(水滸志)의 송강(宋江·1082∼1135, 휘종 재위 때 인물)을 거명하면서 그들의 덕과 화합 능력을 극찬했다. 그는 “얼핏 무능해 보이지만 (유방·유비·송강이) 지도자로 추대될 수 있었던 비결은 유능한 인재들을 단결시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유능한 인재들을 지극한 정과 믿음으로 소통하도록 한 것은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주목하지 못한 (유방·유비·송강의) 큰 능력”이라고 평가했다.



 시진핑은 청년 시절 산시(陝西)성에서 7년간 생활하면서 고전을 포함해 수많은 책을 독파했다. 그는 글자를 모르는 농민들에게 삼국지·수호지·초한지 얘기를 들려주며 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1900년대 초 마오쩌둥(毛澤東)이 청소년 시절 고향 후난(湖南)성에서 고전을 섭렵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산시성 푸핑현에 있는 아버지의 집 대문. 시진핑이 졸업한 칭화대의 교훈인 후덕재물(厚德載物)이 걸려 있다. [푸핑현=장세정 특파원]


 지난 1월 3일 소설 수호지의 무대인 산둥(山東)성 량산(梁山)현 량산 산채(山寨). 시진핑이 높게 평가한 송강의 리더십을 알아보려 기자도 관광객 틈에 끼어들었다. 산둥 지난(濟南)에서 역사 교사를 하고 있다는 쑨(孫)씨는 “중국인들은 다 아는 송강의 별명은 급시우(及時雨·제때 내리는 단비)다. 시 부주석은 송강처럼 단결과 화합을 중시하는 포용력이 있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허베이(河北)성에서 왔다는 60대 관광객 리(李)씨는 “송강은 두령 조개(晁盖)가 죽은 뒤 인화단결을 더 중시했다”며 “국가주석이 될 예정인 시 부주석이 송강을 칭찬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고 말했다.



 1월 5일 찾아간 유방의 고향 장쑤(江蘇)성 페이(沛)현 박물관. 전시물에서 마오쩌둥의 유방에 대한 인물 평가가 눈에 띄었다. 마오는 “유방이 항우(項羽)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책략도 옳았지만 사람을 잘 썼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시진핑의 유방 평가와 흡사하다.



 시진핑의 리더십에 대해 지난해 12월 베이징에서 만난 중앙당교(黨校) A교수는 주목할 만한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지금 중국 지도자가 반드시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며 “오히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제안을 경청해 국정에 잘 활용할 줄 아는 덕목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유방은 “나의 책략은 장량(張良)보다 못하고, 나의 군수동원 능력은 소하(蕭何)보다 못하고, 싸움은 한신(韓信)보다 못하지만 나는 이들 세 영웅을 잘 부렸다. 그런데 항우는 책사 범증(范增)이 있었지만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고 했다는 것이다.



 덕을 중시하는 시진핑의 스타일은 가정교육과 떼놓을 수 없다. 그는 ‘중화자녀’ 인터뷰에서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아버지 시중쉰(習仲勛)이 어려서부터 “단결을 중시하고 단결을 잘 하는 사람이 돼라고 요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말을 아버지한테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고 했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92년 개혁·개방 가속화를 선언한 남순강화(南巡講話) 시절 “중국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당 내부에서 생길 수 있다”며 단결을 강조한 바 있다. 시진핑이 최고지도자로 집권하게 될 향후 10년 동안 그런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는 분석이 적잖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중국 경제의 경착륙 때나 북한 정세 불안기에 그의 리더십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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