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 Global] 다 벗는 게 어때서 … 배우로서 내 일이다

중앙일보 2012.01.14 01:13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모든 배우에겐 자기만의 전성기가 있다. 이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에겐 지금이 그때다. 그는 운 좋게도 데뷔하자마자 세간의 폭발적 관심을 받으며 곧바로 전성기를 맞은 배우는 아니었다. 15년 동안 무명이었다. 배우로서 원대한 꿈을 꿨던 것도 아니다. 그냥 ‘좋은 감독들이랑 일을 하고 싶다’는, 참 소박한 꿈을 꾸며 그 무명의 세월을 견뎠다. 그러다 슬슬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2008년 스티브 매퀸 감독을 만나 무려 35파운드를 감량해가며 찍은 영화 ‘헝거(Hunger)’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엔 퀜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urious Basterds)’에 출연하며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그리고 2011년. 그는 어디에나 있었다.


2012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
‘엑스맨:퍼스트 클래스’서 매그니토, 마이클 패스벤더

지난해 패스벤더는 영화 ‘제인 에어(Jane Eyre)’의 남자주인공 로체스터를 연기했고,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X-men: First Class)’에서 매그니토로 변신했다. 이어 11월 북미지역에서 개봉한 ‘데인저러스 메소드(A Dangerous Method)’에서는 심리학자 칼 융으로 돌아오더니, 12월 개봉한 ‘셰임(Shame)’에서는 섹스 중독과 정서 장애를 겪고 있는 뉴요커 브랜던으로 열연했다. 그는 이 역할로 지난해 9월 열린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스티브 매퀸 감독과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올해 예정된 활약도 대단하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과 작업한 액션 스릴러 ‘헤이와이어(Haywire)’가 개봉을 준비 중이고, ‘에일리언’의 프리퀄 격으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준비 중인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매퀸 감독과의 세 번째 작품이자 브래드 피트와 공동 주연을 맡게 된 ‘트웰브 이어스 슬레이브(Twelve Years a Slave)’도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14일 열릴 골든 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로도 이름을 올렸고, 이달 말 발표될 아카데미상 후보 자리 역시 이미 예약해 놓은 상태다. 올해 나이 서른넷. 이르다면 이르고 조금 늦었다면 늦었다고도 볼 수 있는 지금, 그는 배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만끽하는 중이다.



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배우 인생 최고의 전성기



마이클 패스벤더가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역할을 맡아 출연한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며 칼 융의 스승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은 비고 모텐슨, 그들의 정신분석 대상인 사비나 역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맡았다. ‘플라이’ ‘비디오드롬’ ‘폭력의 역사’ 등의 영화로 유명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작품이다.
●‘데인저러스 메소드’에서 칼 융을 연기했다. 실존 인물에 어떻게 접근했나.



 “그에 대해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았다. 출연을 확정 짓고 리서치를 시작했는데, 심리학이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까운 그의 가르침에 놀라웠고 융이 고안해 낸 개념이나 단어들이 현대 우리 실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아가는 게 재미있었다. 그와 관련된 서적이나 인터뷰 영상도 닥치는 대로 봤다. 하지만 그 많은 정보들을 내 것으로 소화하고 나서는 모든 것을 다 다시 던져버리고 오로지 대본으로만 돌아갔다. 내가 표현해내야 할 융은 딱 대본에 나와있는 그 시절, 그 모습의 칼 융뿐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대사를 잘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을 했다. 아주 능변이면서도 뚜렷한 주관이 있는 캐릭터의 말투를 구사해야 했다. 동시에 1900년대 정신의학계의 분위기를 내면서도 의학용어들을 능숙히 쓸 줄 알아야 했다. 음악을 듣는 느낌으로 대본을 팠던 것 같다. 노래하는 듯한 리듬을 찾기 위해 읽고 또 읽었다.”



●프로이트 역을 맡은 비고 모텐슨과의 불꽃 튀는 연기 앙상블이 인상적이다.



 “비고 모텐슨과 함께 연기를 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긴장을 많이 했었다. 처음에는 ‘저 사람은 뭘 하나’ 트레일러에 숨어 몰래 훔쳐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금방 친해졌다. 그는 아주 너그럽고도 준비가 철저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많은 배우였다. 현장에서 작품 사진도 많이 찍는 등 예술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이기도 했다. 곁에서 많이 배웠다.”



●‘데인저러스 메소드’의 칼 융이 ‘셰임’의 섹스 중독자 브랜던을 봤다면 뭐라고 말했을 것 같나.



 “‘내 친구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 가봐라’ 할 것 같다. (웃음) 일단 상담을 위해 찾아왔다면 시작은 ‘괜찮다’고 말해주며 이야기를 해보라고 위로할 것 같다. 집단 무의식이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흥미를 가졌던 융인 만큼 실제 임상에서도 그 부분에 큰 관심을 갖지 않겠나.”



●‘셰임’의 브랜던은 정말 연기하기 어려웠을 텐데.



 “브랜던이라는 캐릭터와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대본만 350번 읽었다. 어떻게든 그를 더 알고, 이해하고, 그와 하나가 되기 위해 애썼다. 평상시에도 ‘브랜던이라면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뭘 하고 있을까’ 상상했고, 이를 통해 생각해 낸 사소한 리얼리티들을 매일매일 캐릭터에 더해나갔다. 브랜던에 대한 주관적 판단이나 평가는 스스로 철저히 막았다.”



●청소년 관람불가인 ‘NC-17’ 등급을 받았다. 전라의 모습도 여러 번 노출된다.



 “‘그렇게 다 보여줄 필요가 있었느냐’는 질문도 가끔 받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섹스중독자에 관한 영화다. 브랜던은 파자마 따위는 걸치지 않고 실제로 벌거벗은 채 집안을 활보하며 그렇게 다녔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도 영화에 그런 모습을 담았을 뿐이다.”



●노출 연기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스티븐 매퀸 감독의 요구도 아주 간단했다. ‘넌 배우야. 이게 네 직업이잖아. 자, 이제 캐릭터에 리얼리티를 더해봐’ 하는 식이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이 ‘정말 다 벗어? 앞으로 네 커리어는 어쩌려고?’ 하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난 정치인이 아니다. 난 배우이자 스토리텔러다. 대본 속 캐릭터를 가능하게 만들어내는 게 내 일이다. 이번 역시 내 일을 한 것뿐이다.”



●동생인 시시 역을 맡은 캐리 멀리건과의 호흡이 좋았다. 영화엔 나오지 않은 동생과의 뒷이야기를 따로 설정하고 촬영에 임하진 않았나.



 “분명 두 사람 사이엔 감추어진 많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일례로 브랜던과 시시는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그 사실 자체가 이미 많은 걸 이야기하고 있다고 봤다. 캐리와도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하지만 각자의 해석을 공유하진 않았다. 각자 나름의 뒷이야기를 상상하고 촬영에 임했을 뿐이다. 오히려 비밀스러운 부분을 남겨두는 게 더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 설명이 없지만, 분명 아픈 과거가 있으리라는 느낌만 남겨 놓는 게 좋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이 영화를 볼 지적이고도 감성적인 많은 관객은 우리 같은 배우들보다 훨씬 훌륭하게 캐릭터들의 여백을 채워 넣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로보캅’도 할 수 있다



●항상 복합적이고도 어려운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는 듯하다.



 “작품을 볼 때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갈등’이다. 인물 간의 갈등은 물론이고 인물 내적인 갈등에서도 매력을 느낀다. 그 속에서 숨겨져 있던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지루한 현실과는 다른 색다른 재미와 궁금증이 생겨난다고 본다. 선인과 악인의 이분법은 따분하다. 더 도발적이고 인상적인 캐릭터들을 원한다.”



●스티브 매퀸 감독과는 벌써 세 번째 영화도 함께하기로 계약을 마친 상태다.



 “그냥 너무 잘 맞는다. 언제나 만족스러운 작품을 갖고 와 함께하자고 제안해준다. 그와 함께 영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감사하다. 큰 축복이다. 매퀸 감독과의 첫 작품이었던 ‘헝거’는 나에게 있어 도약의 발판이었다. ‘셰임’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영화를 찍는 데 있어 그 어떤 ‘규칙’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 부분이 정말 멋지다. 사실 서로 그렇게 좋아하는 사이는 아닌데 인터뷰를 할 때는 서로 칭찬해주기로 약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웃음)



●영화 ‘로보캅’ 리메이크에 출연하고 싶어한다는 소문이 있다. 색다른 행보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본을 받았고 감독과도 만났다. 아직 결정된 바는 없고 ‘죽어도 해야겠다’ 싶은 것도 아니다. 난 언제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메탈 슈트를 입고 로보캅을 한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정말 그렇다. 내 인생의 ‘스위트 스폿(sweet spot)’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큰 꿈을 꾸고 배우를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좋은 감독이나 동료 배우들과 일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었다. 그게 제일 감사하다.”



What Matters Most?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Next’다. ‘다음에 뭘 할까’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껏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돌아보며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두려움 없이 계속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