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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반세기 전 일본의 청춘이 지금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

중앙일보 2012.01.14 00:00 종합 23면 지면보기
청춘의 문 1·2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박현미 옮김, 지식여행

1권 548쪽, 2권 492쪽

각 권 1만3900원




청춘에는 청춘의 문법이 있다. 막상 청춘에 당면한 이들은 그 문법을 알아채기 어렵다. 청춘의 문법은 청춘을 무사히 통과한 이들에게나 얼핏 얼굴을 내미는 법이다. 요약하자면, 그 문법은 이런 식으로 정리된다.



 ①(이미 유행한 말이지만) 청춘은 아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②(누구에게나 그렇듯) 청춘은 사랑이다. 사랑하니까 청춘이다. ③(마음에도 몸에도) 청춘은 성장이다. 성장하니까 청춘이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이 문법처럼 난해한 것도 없다. 청춘이란, 아직 여물지 못한 인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여린 청춘들은 아프게 사랑하며 성장해가는데, 그 과정을 다 겪고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그게 청춘이다.



이츠키 히로유키는 숱한 기록을 남겼다. 1989년 출간된 『청춘의 문』 문고판은 초판 100만부를 찍었는데, 일본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지식여행 제공]
 일본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五木之·80)의 소설 『청춘의 문』은 그런 청춘의 문법을 문학적으로 성찰한 책이다. 난해한 청춘의 문법을 문학으로 풀어냈다.



 기본적으론 이부키 신스케라는 인물의 성장기다. 신스케의 유아기부터 청년기까지를 순차적으로 담아냈다. 시대 배경은 일본 제국주의가 극에 달했을 즈음. 그러니까 한국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일제강점기가 소설의 시작이다. 저자의 성장기와도 겹친다. 1932년생인 저자는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縣)에서 태어났지만, 유년기를 서울과 평양에서 보냈다. 한국 전쟁통에 일본으로 돌아왔고, 훗날 작가로 성장했다.



 소설 속 주인공 이부키 신스케의 삶에선 그런 저자의 경험이 적잖게 묻어난다. 신스케는 지쿠호 지방의 석탄산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그 즈음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다. 신스케의 성장기와 더불어 소설은 일본 근대사의 문제를 건드린다.



 특히 조선인과 일본인의 관계를 묘사한 대목에 눈길이 간다. 신스케의 아버지 주조는 강제 징용된 조선인을 구하려다 죽는다. 신스케 역시 조선인 김주열과 인연이 얽힌다. 김주열은 주조 덕분에 목숨을 구한 인물이었다. 그는 그 보답으로 신스케 모자를 돌본다.



 묵직한 역사를 배경으로 취했지만, 소설은 그 배경마저 청춘의 이야기로 끌어안는다. 소년 신스케를 얽매는 것은 장엄한 역사라기보다 청춘의 실존적 고민들이다. 그는 사랑과 성, 죽음이라는 문제와 겨루며 성장기를 통과해간다. 소설이 신스케가 성에 눈뜨는 과정에 적잖은 페이지를 할애한 것도 사랑이 청춘의 다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리라.



 『청춘의 문』은 1권(고향편)과 2권(자립편)이 먼저 출간됐다. 1권은 신스케의 청소년기, 2권은 신스케의 대학 진학 이후를 그리고 있다. 4월까지 모두 7권이 완간될 예정이다. 이 장엄한 대하소설은 그러나 청춘의 문턱을 넘지 못한 지점에서 마무리된다. 20대 중턱에 이른 신스케는 여전히 청춘의 방황을 끝내지 못한 채 시베리아로 떠난다.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신스케의 삶은 지금 이곳의 청춘과 닮았다. 반세기 전 일본의 청춘에서 2012년 한국의 청춘이 읽힌다. 삶의 길을 헤매는 신스케의 모습은 취업난 등으로 장래가 막혀버린 이 땅의 청춘들과 가만히 겹쳐진다.



 하지만 이런 역설을 말해도 될까. 청춘은 불확실해서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그것은 이 소설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청춘의 장벽에 가로막혔음에도 신스케는 이런 말을 한다.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시험해보고 나서 정하면 된다. 그것이 청춘이라는 어설픈 울림이 있는 계절을 가진 인간의 특권이다.”



 그래, 청춘에겐 얼마간의 특권이 허락된다. 아무렇게나 꿈꾸고, 아무렇게나 사랑해도 무방하다. 사람들은 그래서 늘 청춘을 그리워하는 모양이다. 70년 첫 출간된 『청춘의 문』은 지금까지 일본에서만 2200만 부가 발행됐다. 이 대중적 열광의 밑바닥엔 청춘을 향한 짙은 그리움이 흐르고 있을 게다. 당신도 나도 청춘의 문 앞에서 서성이던 날이 있었다.



◆이츠키 히로유키=1932년 일본 후쿠오카 출생. 『안녕히, 모스크바 불량배』로 1966년 소설현대신인상, 『창백해진 말을 보라』로 67년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69년부터 93년까지 24년간 『청춘의 문』(총 7권)을 집필했으며, 이 소설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받았다. 78년부터 32년간 나오키상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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