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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누가 이름값을 하려나?

중앙일보 2012.01.14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정진홍
논설위원
#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가히 광속으로 퍼져나간 ‘이름 짓기’ 신드롬이 식을 줄 모른다. 각종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1위를 독점한 것은 물론이고 트위터·페이스북에서도 난리다. 중세식·일본식·아즈텍식·조선식 이름 짓기로까지 변모하며 장난스러운 것도 적잖지만 ‘인디언식 이름 짓기’만은 진짜 그럴듯하다.



# ‘인디언식 이름 짓기’란 태어난 해의 끝자리 수와 생월, 생일에 부여된 글자를 조합해 만든 이름을 말한다. 먼저 태어난 해의 끝자리 수에 따라 0:시끄러운, 1:푸른, 2:붉은, 3:조용한, 4:웅크린, 5:하얀, 6:지혜로운, 7:용감한, 8:날카로운, 9:욕심 많은 등의 수식어를 붙인다. 그리고 생월에 따라 1:늑대, 2:태양, 3:양, 4:매, 5:황소, 6:불꽃, 7:나무, 8:달빛, 9:말, 10:돼지, 11:하늘, 12:바람 등을 주어로 삼는다. 끝으로 생일에 따라 1:~와 함께 춤을, 2:~의 기상, 3:~는 그림자 속에, 4~6: (붙임말 없음), 7:~의 환생, 8:~의 죽음, 9:~아래에서, 10:~를 보라, 11:~가 노래하다, 12:그림자, 13:~의 일격, 14:~에게 쫓기는 남자, 15:~의 행진, 16:~의 왕, 17:~의 유령, 18:~를 죽인 자, 19:~는 맨날 잠잔다, 20:~처럼, 21:~의 고향, 22:~의 전사, 23:~는 나의 친구, 24:~의 노래, 25:~의 정령, 26:~의 파수꾼, 27:~의 악마, 28:~와 같은 사나이, 29:~을 쓰러뜨린 자, 30:~의 혼, 31:~는 말이 없다 등의 술어를 붙이면 인디언식 이름 짓기가 완성된다.



# 이런 방식으로 인디언식 이름 짓기를 하면 이명박 대통령(1941년 12월 19일생)은 ‘푸른 바람은 맨날 잠잔다’가 되고 사퇴압박을 받는 박희태 국회의장(1938년 8월 9일생)은 ‘날카로운 달빛 아래에서’가 된다. 이를 두고 혹자는 가수면 상태가 된 청와대를 떠올리고,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 국회의장을 연상할지 모른다. 물론 생각은 자유다. 또한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1952년 2월 2일생)은 ‘붉은 태양의 기상’, 안철수 원장(1962년 2월 26일생)은 ‘붉은 태양의 파수꾼’, 그리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1953년 1월 24일생)은 ‘조용한 늑대의 노래’, 한명숙 전 총리(1944년 3월 24일생)는 ‘웅크린 양의 노래’라는 이름이다. 두 사람은 붉은 태양의 기상과 파수꾼으로 맞서고 다른 두 사람은 노래를 하는 형국으로 묘하게 대비되어 연상된다. 그런가 하면 ‘깔때기’라는 애칭과 함께 수감 과정에서도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던 정봉주 전 의원(1960년 7월 2일생)은 ‘시끄러운 나무의 기상’이란 이름이다. 그냥 심심풀이로 넘기자니 묘한 여운이 남는 것이 사실 아닌가.



# 실제 인디언들에게 1월은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수우족), 눈이 천막 안으로 휘몰아치는 달(오마하족),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뚝뚝 부러지는 달(주니족)일 뿐만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아리카라족)이다. 바로 그 1월에 인디언들은 어린애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둘러앉아 화살촉을 갈고 새 끈으로 묶는 일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내일의 싸움을 준비했다. 우리는 과연 어찌하고 있나?



# 『시튼동물기』의 저자이자 인디언의 삶과 문화를 깊이 통찰했던 어니스트 톰슨 시튼에 따르면 인디언들에게는 ‘성공’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대신 “내가 동족들에게 얼마나 많은 봉사를 했는가?”하는 것이 인디언들 사이의 위대함을 재는 유일한 척도다.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공동체의 존립과 지속을 위한 희생과 봉사가 가장 중요한 덕목인 셈이다. 그러니 ‘붉은 태양의 기상’이든 ‘붉은 태양의 파수꾼’이든 그들이 지향해야 할 것은 스스로의 높아짐이 아니라 동족과 공동체를 위해 몸바치겠다는 헌신의 의지와 실천이리라. 그것이 진정으로 제 이름값 하며 사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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