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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보선 대통령의 빛과 그림자

중앙일보 2012.01.13 03:30 6면 지면보기
해위(海葦) 윤보선 전 대통령(1897~1990·사진)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화려한 세도가 출신이다. 집안 사람 중 무려 50여 명이 한국인명사전에 이름이 등재돼 있다. 윤 전 대통령은 1897년 8월26일 충남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 새말에서 아버지 윤치소씨와 어머니 이범숙씨 사이의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12년 일출소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고, 이후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대한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아산 둔포면에서 태어나 동천리에 묻히다

 윤 전 대통령은 1921년 6월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1930년 에든버러대학교 고고학과를 졸업하고 1932년 귀국할 때까지 10여 년을 해외에 머물렀다.



 그는 귀국 후부터 1945년 해방때까지 13년간 바깥활동을 하지 않고 서울 안국동 자택에서 칩거생활을 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해위는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미군정청 농상국 고문, 미군정청 경기도지사 고문직을 마친 후 1948년 5·10총선때 고향인 아산에서 제헌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48년 8월15일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된 후 그는 초대 서울시장, 상공부장관,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지냈다.



 하지만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1952년 일부 의원들을 연행하는 등 폭압적인 방식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하는 ‘발췌 개헌’을 통과시키자 윤 전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 정권과 결별, 야당으로 노선을 바꿨다.



 그 뒤 1954년부터 3~5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민주당 중앙위원회 의장,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 야당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이 마을 뒷산에 위치한 해위 윤보선 대통령 묘소 전경. [조영회 기자]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이승만 정권이 붕괴됐고, 그 해 8월 해위는 내각책임제 하에서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이듬해인 1961년 박정희 정권의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면서 1962년 3월 짧은 임기를 마치고 하야했으며 1966년에는 선명 야당의 기치를 걸고 ‘신한당’을 창당해 총재로 취임했고, 6대 대선을 앞둔 1967년에는 야권 후보단일화를 위해 민중당과 합당한 ‘신민당’을 창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으나 낙마했다. 1979년 신민당 총재상임고문을 지내던 중 정계에서 은퇴했다.



윤 전 대통령은 1990년 노환으로 서울 종로구 안국동 자택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생가는 아산 둔포면 신항리에 중요민속자료 제196호로 보존돼 있다. 묘소는 음봉면 동천리 75-4번지인 이곳 꽃가꾸는 대통령마을에 위치해 있다.



정리=조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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