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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18) 김우중과 나 <2> 뉴욕에서의 약속

중앙일보 2012.01.13 00:00 종합 10면 지면보기
1980년 가을, 이헌재는 지독한 밤안개를 헤치고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차를 몬다. 김우중 당시 대우 회장(그림)을 만나기 위해서다. 보스턴대에서 막막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던 그에게 김 회장은 “도와주겠다”며 손을 내민다.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처음 만난 건 1976년이었다. 그는 갓 마흔의 촉망받는 실업가였다. 대통령의 총애가 대단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나 역시 그때 잘나간다는 공무원이었다. 서른하나에 재무부 금융정책과장을 맡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통령 총애 대단' 소문난 김우중과 첫만남때
40세 유망 기업가, 31세 재무부 과장
공기업 인수 때 처음 만나 신경전



 김 회장은 한국기계 인수에 몰두해 있었다. 한국기계는 자동차 엔진과 철도 차량을 만드는 국내 최대 종합기계 제조사였다. 훗날 대우조선과 합해 대우중공업이 된다. 당시엔 지분 대부분을 산업은행이 가진 사실상 공기업이었다. 규모와 매출은 크지만 부실이 심각했다. 박정희 정부는 이 회사를 민간에 넘겨 정상화하기로 했다. 매각 작업이 내게 떨어졌다. 그때 김 회장이 인수자로 나타난 것이다.



 그는 예의 굵은 검은 테 안경에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에너지가 넘치고 호남형이었다. ‘사장이 직접 왔구나’. 나중에 그를 지켜보며 알게 됐지만, 그는 중요한 일은 모두 직접 다니며 처리했다. 열정이라면 당해낼 사람이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인상은 치밀함이었다. 바늘 끝만 한 빈틈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실무와 숫자를 꿰뚫고 있었다. 논리도 막힘이 없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호감은 호감이고 일은 일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부딪쳤다. 인수 가격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나는 그가 제시한 인수 가격보다 30% 이상을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은행이 공장 짓는 데 지원한 돈을 감안하면 자산 가치가 적어도 250억원 이상은 돼야 합니다.”



 “100을 투자했다고 하시는데, 따져보면 60만 투자했다고 봐야 합니다. 헛돈을 쓴 겁니다. 공장 땅을 다지면서 하나면 될 파일을 두 개 넘게 박았어요. 그렇게 낭비한 것까지 우리가 어떻게 다 쳐 줍니까.”



 회계도 엉망이던 시절이다. 실사자료도 믿을 만한 게 못 됐다. 250억원이란 가격은 나 혼자 밤을 새워가며 내본 답이었다. 그쪽 말이 맞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기고 싶었다. ‘나 역시 논리로는 지지 않는다’는 오기 같은 것이었으리라. “250억원 아니면 안 된다”고 버텼다. 2개월이나 줄다리기를 하고 있자니 위에서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우에 주기로 한 것인데 왜 계약이 체결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끝내 그가 양보를 했다. 김 회장은 원래 생각했던 가격보다 약간 높은 가격에 한국기계를 인수했다. 곧 대우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는 섬유그룹 대우를 중공업회사로 도약시키는 발판이 된다. 그는 그때의 나를 어떻게 기억했을까. 나중에 1년반을 붙어 지내면서도 물어본 적은 없다. 그 역시 나쁜 인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후 뜻하지 않게 공직을 그만둔 나에게 가끔 먼저 연락을 해온 것을 보면 말이다.



 80년 가을. 보스턴에는 지독한 안개가 끼었다. 공항은 이미 폐쇄됐다. ‘어쩐다…. 지금 만나지 못하면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는데…’. 다음 날 아침, 뉴욕 JFK공항 앞 힐튼호텔 식당에서 김우중 회장을 만나기로 한 참이었다. 1년 전쯤인 79년 말 공직을 그만두고 보스턴 대학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던 때였다. 유학 생활은 막막했다. 원해서 정부를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제 무얼 하고 사나…’. 고민하던 참에 그가 연락을 해 왔다. “뉴욕에 가네. 올 수 있으면 공항 앞 호텔에서 아침 식사나 하세.” 그런데 공항이 폐쇄된 것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또 언제 뉴욕에 올지 모른다’. 나는 뉴욕까지 차를 몰기로 결심했다. 1300달러를 주고 산 포드의 고물 자동차였다. 안개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설설 기면서 운전했다. 400㎞가 넘는 길. 속력을 낼 수 없어 9시간이 걸렸다. 나름 목숨을 건 밤샘 운전이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5시. 차에서 쪽잠을 자고는 시간에 맞춰 공항 앞 힐튼호텔에 들어갔다. 대우 직원들로 로비가 꽉 차 있었다. 김 회장이 나를 구석으로 불러 같이 아침을 먹었다.



 “옥포조선을 인수하게 됐네.”



 “하지 마십시오. 애물덩어리 아닙니까. 빚도 많고.”



 “….”



 그는 이미 결심을 한 눈치였다.



 “자넨 지내기가 어떤가.”



 “어렵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말만 하게. 도와주겠네.”



 그가 내 손을 잡았던가. 그랬던 것 같다. 답답했던 유학 생활에 든든한 후원자 하나를 얻게 된 느낌이었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 내 기대보다 큰 도움을 베풀었다. 보스턴 생활을 통해 나는 가치관이 크게 바뀌는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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