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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찾아준 가방

중앙일보 2012.01.13 00:00 종합 16면 지면보기
금대훈 경위(왼쪽)의 노력으로 가방을 되찾은 러시아 소년 세르게이 카셰이(왼쪽 둘째)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가방. 버스. 삼이사이. 돈 십만칠천원. 사백팔십달러….”


차에서 가방 분실 러시아 가족
“버스, 삼이사이, 십만칠천원 … ”
한국말 설명에 경찰이 도움

 8일 오후 4시15분 서울 잠실지구대에 러시아 소년 세르게이 카셰이(13)가 어머니 타티아나(39)와 함께 들어섰다. 가방 분실 신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세르게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국어였다. 표현이 잘되지 않는 부분은 영어를 섞어가며 말했다. 세르게이는 부모와 함께 강원도 용평의 스키장에 놀러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셔틀버스에 여행 가방을 놓고 내렸다고 설명했다. 셔틀버스의 차량번호는 ‘3242’, 가방에 든 현금은 한화 10만7000원과 미화 480달러였다. 가방에는 가족의 여권과 비행기 티켓도 들어 있다고 했다.



 잠실지구대 금대훈(41) 경사는 세르게이의 말을 바탕으로 가방을 역추적했다. 운전기사의 연락처를 알아내 서울 잠실동 차고지에 주차된 셔틀버스에서 가족의 여행가방을 들고 돌아왔다. 사라진 물품도 없었다. 금 경사는 “소년이 한국어로 상황을 말한 덕분에 쉽게 가방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창한 건 아니었지만 러시아 소년이 한국어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의 ‘한류’ 사랑 덕분이었다. 세르게이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지역주민센터에서 지난해 9월부터 한국어를 배웠다. 세르게이의 한국어는 숫자와 거리 간판을 거뜬히 읽고 초보적 회화를 하는 수준이다.



 어머니 타티아나는 “한국어 발음의 아름다움에 빠져 한국 드라마를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중 탤런트 이선균이 셰프로 나오는 ‘파스타’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극중 나오는 요리도 직접 따라해 보기도 했다. 아버지 세르게이(43)는 “한국 음식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밥을 말아 주변 친지들에게 나눠준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가족은 한국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고 싶어 지난해 12월 21일 방문했다. 가방을 잃었다 되찾은 8일은 마침 타티아나의 생일이었다. 타티아나는 “내 생애 가장 잊지 못할 생일”이라며 “이날 하루 한국 사람들에게서 받은 친절함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정봉·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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