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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갖고 노는 '풍자개그', 직설적인 비판 했다간

중앙일보 2012.01.13 00:00 종합 22면 지면보기
최효종
“용감한 소방관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희생정신 봉사정신 그리고 장난전화를 견딜 인내심만 있으면 돼요. (…)또 아무리 불을 잘 꺼도 도지사의 목소리를 기억 못 하면 좌천될 수 있답니다.” -KBS ‘개그콘서트-사마귀유치원’. 김문수 지사의 소방관 질책을 비꼬며.


정치인을 캐릭터처럼 갖고 논다 … ‘풍자 개그’ 전성시대
개그콘서트·개그투나잇·SNL코리아 등 시사코미디 인기몰이

“모 정당이 스마트폰을 이용한 SNS를 선별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을 모색하다가 여론이 들끓자 철회했다고 합니다. 이걸 보고 모 네티즌이 얘기했죠. SNS는 차단하는 거 아니에요. 자외선이나 차단하세요.” -SBS ‘개그투나잇’. 국회의 SNS 차단법 철회를 두고.



강성범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인사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이한 청년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라고 전했습니다. 증명할 수 없는 진실을 얘기하면 안 됩니다.” - tvN ‘SNL코리아-위켄드 업데이트’.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해.



새해 첫날부터 날카롭게 찔러댔다. 1일 KBS ‘개그콘서트-사마귀유치원’에서 개그맨 최효종은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소방관 질책을 소재로 삼았다. 반응은 뜨거웠다.



장진
 “용감하고 멋진 소방관이 되려면 담당 관할구역 도지사의 목소리를 반드시 기억해야 돼요. 아무리 불을 잘 꺼도 도지사의 목소리를 기억 못 하면 좌천될 수 있답니다.”



 총선과 대선이 겹친 2012년 한국 사회,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정치 풍자’가 대세다. 그 앞자리에는 최근 시청률 20%를 돌파한 ‘개그콘서트’가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효종이 ‘사마귀 유치원’에서 답답한 우리 현실을 꼬집었고, 김원효는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관료주의를 비꼬며 인기를 끌었다. ‘강용석 의원 고소 사건’을 개그로 받아친 이후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감독 장진이 진두 지휘하는 케이블 tvN의 ‘SNL(Saturday Night Live) 코리아’는 수위가 더 높다. 연극·영화판을 두루 누빈 장진 감독이 뉴스형식을 빌어 진행하는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에서는 실명 비판이 주를 이룬다. “친인척 비리문제의 이명박 대통령, 대권 준비 잘 하다가 예상치 못한 신인들을 만나 주춤했던 손학규 대표”를 ‘2011년 가장 불행한 인물’ 후보로 두는 식이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를 패러디한 MBC ‘웃고 또 웃고-나는 하수다’도 청와대 디도스 사건, 이명박 대통령 신년사 등을 도마 위에 올렸다. 두 달 전 문을 연 SBS ‘개그투나잇’은 ‘시사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웠다. 학교 폭력, 지하철 ‘막말남’ 등 사회적 이슈를 콩트로 만들고, 국회 SNS 차단법 철회 등 정치적 논쟁거리도 소재로 삼았다. ‘개그투나잇’은 심야 프로그램임에도 시청률 8%를 넘어섰다.



 ◆정치와 일상의 섞임=시사 코미디는 1980년대에도 붐을 이뤘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는 “전두환 정권의 강압통치가 힘을 잃기 시작한 80년대 후반 김형곤의 ‘회장님, 우리 회장님’ 같은 정치풍자가 큰 인기를 끌었다”며 “풍자개그는 사람들이 권력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시기, 소위 레임덕 시기에 호소력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대선·총선이 있는 올해엔 새로운 정치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이 높아 시사 코미디에 대한 호응이 더 큰 편”이라고 풀이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날개를 단 ‘나는 꼼수다’ 열기도 이런 트렌드를 거들고 있다. 김은영 추계대 교수(영상비즈니스)는 “SNS를 통해 정치와 일상의 경계가 무너졌다. 누구나 자유롭게 정치를 비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분석했다. ‘롤플레잉 게임(게이머가 게임 내 등장인물이 돼 진행하는 방식)’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특성도 시사개그와 연관성이 있다. 김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은 정치인·권력자들도 게임 캐릭터처럼 롤플레잉의 대상으로 삼고 즐긴다”고 설명했다.



 ◆재미와 비판 사이=정치현실을 소재로 삼는다고 해서 호응을 얻는 것은 아니다. “(김정일) 조문단이 이슈다. 정부에서 하지 말라니까 하지 마십시오” 등 직설화법에 가까운 장진 감독의 발언은 객석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직접적인 비판은 웃음의 강도를 떨어뜨린다. 트위터에 “풍자는 좋지만 일단 재미 있어야 하지 않을까” “화제가 된 건 (장진의) 촌철살인 코멘트 때문이지만, 재미없을 때도 있다. 어깨 힘 좀 빼고 조금만 다듬어달라” 등의 글이 올라오는 이유다.



 MBC ‘나는 하수다’에 대해서도 “첫 회는 신선했는데 2회에서 너무 풍자하려고 하면서 재미가 덜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규성 평론가는 “직설화법은 오히려 불편함을 준다. 풍자 개그는 말 그대로 비꼬고 뒤틀었을 때 웃음을 주며, 공감대와 교훈이 녹아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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