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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하방

중앙일보 2012.01.13 00:00 종합 29면 지면보기
임금은 선농제(先農祭)를, 왕비는 선잠제(先蠶祭)를 지냈다. 왕이 직접 친경(親耕)하고 선농단(先農壇)에서 농사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또한 농사의 작황을 살피는 관가(觀稼)와 어로(漁撈) 현황을 살피는 관어(觀魚)도 했다. 왕비도 직접 뽕잎을 따는 친잠(親蠶)을 하고 선잠단(先蠶壇)에서 누에신에게 제사하는 선잠제(先蠶祭)를 지냈다. 『예기(禮記)』 ‘제통(祭統)’ 편은 국왕과 왕비가 친경(親耕)하고 친잠(親蠶)하는 것은 “밭을 경작하고 양잠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몸소 그 정성과 믿음을 다하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국왕이 친경할 때는 정승을 비롯한 고위관료들이, 왕후가 친잠할 때는 내·외명부(內外命婦)의 1품 이하 여성들이 함께 참여했다. 위로는 하늘을 공경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노동의 괴로움을 몸소 경험한다는 취지였다.

 잠곡(潛谷) 김육(金堉)이 대동법 확대 실시와 양반들도 군포(軍布)를 내자는 호포제를 주장한 데는 배경이 있다. 그는 벼슬길에 나오기 전 경기도 가평에서 10여 년간 직접 농사를 짓고, 숯을 팔아 생활했다. 백성들의 고초를 잘 알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았다. 동인과 서인의 갈등이 심해지자 선조(宣祖)는 동인 영수 김효원(金孝元)을 함경도 경흥(慶興)부사로 내보냈다. 그런데 『선조수정실록』은 여러 사람이 “경흥은 변방으로 오랑캐 땅과 가까워 서생(書生)이 지키기에 마땅하지 않다”고 주장해 부령(富寧)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무관 위에 문관 총사령관인 도체찰사(都體察使)를 두었던 나라에서 서생 운운하며 오지 부임을 꺼렸던 데서 이미 임란의 비극은 예고되어 있었다.

 차기 중국을 이끌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이 과거 한 토굴에서 7년 동안 중노동에 종사했다고 전한다. 간부·지식인이 농민·노동자의 생활을 체험하는 하방(下放)이다. 문혁(文革) 시절의 하방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지만 시진핑 자신이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그 체험 때문’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장점도 많다. 우리 사회 양극화의 해법 중의 하나로 생각할 만하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체험해 보고, 정규직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대학교수는 고학하는 대학생의 생활을 체험해 본다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많은 갈등을 해소하는 방책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제 논에 물 대기인 아전인수(我田引水)에서 나온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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