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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안철수식 고민

중앙일보 2012.01.13 00:00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보균
대기자
안철수 고민은 진행형이다. 벌써 넉 달째다. 그는 아직도 정치 참여를 고민 중이라고 한다. 말투에 미묘한 변화 기미는 있다. 대선 직행 쪽으로 간 듯한 관측도 있다. 선택이 임박했다는 느낌도 준다. 하지만 그의 어법은 애매함 속에 지루하게 존재한다.



 정치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안철수에게 낯설다. 그는 정치에 대해 “게스워크(guesswork·짐작)만 한다”고 했다. 정치 리더십은 비전과 용기의 단련을 통해 숙성된다. 정치 리더십은 속성으로 배양되지 않는다. 김대중(DJ) 대통령은 그런 연마 상태를 ‘준비된 후보’라고 불렀다. ‘준비된 후보’ 과정은 길고 고달프다. 안철수가 정치에 뛰어들면 DJ 관점에선 ‘우연한 후보’다.



 안철수 현상도 진행형이다. 그것은 정치 불신의 산물이다. 그 반사이익은 극적인 우연을 낳았다. 그의 지지율은 대박 행진을 한다. 정치판은 온전한 곳이 드물다. 돈봉투 파문으로 황폐화됐다. 기부와 나눔의 안철수 이미지는 강화된다. 그의 신비주의 파괴력은 상승한다. 그는 정치권의 무혈 입성 기회를 갖고 있다.



 정치는 혐오 대상이다. 하지만 만만하지 않다. 국회에서 법을 고치지 않으면 세상의 실질적 변화는 힘들다. 정치의 사회 장악력이다. 그 힘만큼 누구든지 시험에 들게 한다. 정치 입문자의 적합성과 역량을 따진다. 사회적 영향력은 정치 권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성공한 벤처 기업인이다. 그는 조직관리 역량을 이렇게 비유했다. “수영하는 사람은 수심 2m나 태평양이나 똑같다”고 했다. 그것은 틀렸다. 수영 스타 조오련은 대한해협을 횡단했다. 파도와 상어 공격, 험난하고 돌출적 자연환경에 그는 대비했다. 수영장과 태평양에서의 헤엄은 비교될 수 없다. 안철수의 말은 조오련의 성취를 모욕한다. 그 발언은 상상력의 빈곤이나 과도한 자기 확신이다. 정치 세계는 유동성과 예측불가능성으로 차 있다.



 정치는 CEO 경영 세계와 다르다. 안철수는 “행정이 별게 아니더라···나는 500명 이상을 경영해 봤다”고 했다. 국정은 숫자 개념과 다른 차원이다. 정치적 감수성은 기업 마인드와 다르다. 국정의 불확실성과 긴박함은 독특하다. 기업 성공 리더십의 정치권 전이(轉移)는 어렵다. 이명박 정권의 국정 혼선은 그 차이를 실감나게 한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그에 앞서 정치는 망가뜨리는 곳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의 허망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쏟아야 하는 노력을 생각하면, 권세와 명성은 실속 없고 그나마 너무 짧다”고 했다. 거짓말 유혹, 정치자금 수령, 이전투구의 저주, 사생활 노출을 정치의 난관과 부담으로 들었다. 노무현은 “정치하지 마라”고까지 했다.



 정치 게임은 운이 작용한다. 하지만 대권 드라마는 행운으로만 짜이지 않는다. 용기와 신념이 깔려야 한다. 도전의 열정은 그 속에서 커진다. 기득권자는 힘들다. 노무현은 기득권을 거침없이 포기했다. 그는 네 번 낙선했다. 패배할 줄 알면서다. 건축가 승효상은 그런 행태를 ‘자발적 추방자’로 묘사했다. 승효상은 그 컨셉트로 노무현 묘역을 설계했다.



 노무현은 잃을 게 없는 상황으로 자신의 정치 환경을 재구성했다. 추방자는 잃을 게 없다. 용기와 도전은 추방자의 오기와 집념에서 나온다. 안철수 신화는 특별나다. 그의 책들은 매력적이다. 그를 배우고, 닮고 싶은 충동을 유발한다. 성공은 명예와 기득권을 생산한다. 성공의 속성이다. 안철수도 기득권자다. 기득권자에게 정치는 외도다. 외도로 출발한 정치는 모험이다. IT 성공 신화를 재창출하는 인물로 남길 바라는 여론도 있다. 기득권과 성공 신화는 그의 고민과 계산을 깊게 한다.



 안철수는 이제 정리해야 한다. 정치를 할지, 말지를 결판 지어야 한다. 그의 모호한 언행이 정치 혼란을 키운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 진입하려면 객관적 검증의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다. 그가 말하는 상식이다.



 국민은 만만하지 않다. 정치적 산전수전을 끊임없이 겪어왔다. 그들은 안철수와 유사한 현상과 인물을 과거에도 경험했다. 국민은 검증이 유권자 특권임을 안다. 검증은 저격수를 등장시킨다. 정치에 뛰어들면 당장 그의 미국 움직임부터 대상이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를 만났다. 기부재단 창립의 자문 얻기다. 다수 국민은 안철수가 조언을 구하러 갔는지, 빌 게이츠를 그의 글로벌 이미지 관리에 활용했는지를 따질 것이다. 빌 게이츠는 기부재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정치권엔 진입하지 않았다.



 그의 선택은 마감 시점에 다가가고 있다. 결정의 시간을 늦출수록 의심을 받는다. 저격수의 스코프를 피하려 한다는 여론 비판도 잠재해 있다. 안철수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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