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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재미있는 자연 이야기 <17> 씨앗은 위대하다

중앙일보 2012.01.12 09:08 Week& 6면 지면보기
연일 강추위다. 동물들은 겨울잠을 자며 엄동설한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듯 식물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 겨울을 난다. 낙엽을 떨어뜨려 수분과 열 손실을 막으면서 새 봄에 피어날 싹을 겨울눈으로 감싸 보호한다. 한해살이풀을 비롯해 많은 식물은 씨앗을 만들어 겨울을 난다.


2000년 만에 싹 틔우고, 곰팡이와 공생하고 … 경이로운 서바이벌 시스템

 씨앗은 겨울 한철만 나는 것이 아니다. 예외적인 특별한 경우지만 수백년, 아니 수천년을 나기도 한다. 지난해 여름 경남 함안의 성산산성에서 발견된 700여년 된 연꽃 씨앗이 그랬다. 고려시대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10개 가운데 3개가 꽃을 피워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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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선 더 한 경우도 있었다. 2005년 이스라엘 고대 유적 마사다 요새의 지하에서 발견된 대추야자 씨앗을 과학자들이 싹 틔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탄소연대측정을 통해 200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된 씨앗이었다. 이 씨앗은 발아 3년 만에 높이 1.5m의 건강한 나무(사진 1)로 자랐다. 마사다 요새는 기원후 73년 로마군의 공격을 받은 유대인 960명이 3년 간의 항쟁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이다. 대추야자의 열매는 길이 3~5㎝의 타원형(사진 2)으로 과육은 달고 영양분이 풍부하다.



 씨앗의 생김새나 크기는 식물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 난초의 씨앗은 먼지 만큼이나 작다. 너무 작아 새싹을 틔울 만큼의 양분을 갖지 못해 혼자서는 아예 자랄 수가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곰팡이와 공생을 해야 한다. 반대로 인도양의 세이셸이란 섬나라에서만 발견되는 ‘바다의 코코넛’이란 뜻의 코코 드 메르(coco de mer, 사진 3)는 야자 열매 하나의 무게가 20㎏이 넘는 초대형이다. 덕분에 다른 나무와의 경쟁 속에서 싹이 터 자리를 잡을 때까지 몇 년 동안이고 양분을 공급해줄 수 있다.



 씨앗을 퍼뜨리는 식물은 그렇게 대를 잇기 위해 얼마간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생존요금’이랄까. 가령, 상수리나무는 다람쥐가 땅속에 묻어 둔 채 깜빡한 도토리에서 싹이 나 번식을 하지만 도토리로 묵을 만들어 먹는 사람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커피나무도 벌레를 막기 위해 씨앗에 방어용 화학물질인 카페인을 담았지만 사람들은 그 카페인 때문에 커피콩을 찾는다. 물론 커피나무를 널리 재배하는 것도 사람이긴 하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는 2010년부터 종자은행 구축 사업을 시작해 한반도 야생식물 종자 1000여종 4000점을 영구 보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독도에 분포하는 식물인 댕댕이덩굴(사진 4)과 술패랭이(사진 5) 등의 종자도 확보했다. 지구온난화와 개발로 생태계가 뒤죽박죽 되면서 ‘노아의 방주’처럼 종자를 보관할 곳이 필요해진 탓이다.



 그러나 아무리 환경이 급변해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씨앗을 만들어 생명을 이어가려는 식물의 노력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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