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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종의 미술 투자] 잡아늘린 인물조각 … 이환권 작품이 남다른 이유

중앙일보 2012.01.12 04:05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서연종
하나은행 삼성역 지점장
“매화는 반만 피었을 때 여백의 운치가 있고, 벚꽃은 만개되어야 여한이 없다. 복사꽃은 멀리서 보아야 환상적이고, 배꽃은 가까이서 보아야 꽃의 자태를 자세히 알 수 있다. 복사꽃은 가까이서 보면 비본질적인 요소로 인해 본질이 가려진다.” 법정은 이렇게 아름다움에 대해 집요하게 관찰했다.



 자연은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신의 창조물에 환호하고 만족하기만 했다면 인간은 진화된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작가는 그 아름다움의 절대적 풍경에 지나침은 없는지 혹은 부족한 것은 없는지를 자신에게 냉정하게 물어보는 사람이다. 단순하지만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작가들이다. 그리고 그것에 지독할 정도로 몰두해 자신의 집착과 치열함으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이다.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사물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1차원적인 작품으로는 다른 사람은커녕 자기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무릇 대가들은 기존의 질서가 된 아름다움에 ‘가치 있는 불복종’을 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인류를 변화시킨 사람들이다. 담론과 주제를 추구하는 작가도 있지만, 주어진 전통적인 주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 새로운 유형의 도발적인 아름다움을 발굴해내는 작가도 있다. 이런 도발적인 작가들에게 평론가·큐레이터 같은 미술전문가뿐 아니라 시장도 빠르게 반응한다.



 
이환권의 ‘복사집 딸내미’(왼쪽)와 ‘복사집 아들내미’
젊은 작가 이환권(38)은 2007~ 2008년 ‘옐로칩’(성장 가능성이 큰 중가우량주를 뜻하는 주식 용어) 작가로 집중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작가다. 그의 작품은 2006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 이상으로 팔리면서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만드는 인물들은 평범한 상황 속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기존의 조각 개념으로 보면 이 작품들은 이상하다. 만화경에 비추어진 것처럼 이미지 파일을 잘못 잡아당겨서 길쭉하게 길어진 것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길어지는 대신 좁아지고, 짧아지는 대신 넓어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원리를 작품에 적용했다. 그리고 영상시대의 영향을 받은 세대답게 포토샵으로 컴퓨터 안에서 변형한 이미지를 3차원의 조각으로 옮겨냈다. 그는 기법적인 완성을 위해 첫 전시를 마친 뒤 6개월간 주변과 연락을 끊고 칩거하였다. 완벽한 3D의 구현을 위해 CAD 등의 프로그램을 철저히 익히기 위해서였다. 실로 대가로 성장할 수 있는 훌륭한 자질이다.



 인물은 전통적인 조각의 대상이었다. 20세기에 들어 추상조각, 인스톨레이션(설치미술) 등의 발전으로 인물을 재현하는 구상조각은 설 자리가 좁아졌다. 모두가 구상조각에서 등을 돌릴 즈음에 그는 인물이라는 고전조각의 대상을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높이 175㎝에 폭이 20㎝, 혹은 높이 214㎝, 폭 21㎝라는 특이한 비례의 인물들은 작품이 설치된 현실의 공간마저 일그러뜨리며 만화경 같은 세상을 만들어낸다. 이 난감함과 당황스러움이 바로 현대미술로서의 그의 작품의 매력이다.



 이환권이 자신의 이름을 알린 작품은 ‘복사집 딸내미’와 ‘복사집 아들내미’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법정이 복사꽃을 보면서 얻은 통찰을 이환권은 이웃 복사집 아이들을 보면서 얻었다. 법정의 말대로 동일한 사물이라도 가장 개성적이고 아름답게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논리와 규칙에 근거해 하나의 정답을 내는 게 과학과 기술이다. 그러나 창조성과 예술에는 하나의 답이 아니라 복수의 답이 가능하다. 이환권의 조각이 말해주듯 이제 현대미술은 더 이상 아름다운 자연, 예쁜 과일, 아름다운 얼굴을 그리고 조각하는 것이 아니다. 도구도 붓과 조각칼 등의 한정된 도구로 뚝딱뚝딱 하는 것이 아니라 도발적 창조성으로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도구가 되었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 극단적으로 몰입하고 완전히 이해한 후 그러한 몰입으로 창조되는 예술이야말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서연종 하나은행 삼성역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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