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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살아줘서 고맙다

중앙일보 2012.01.12 03:00 종합 8면 지면보기
중앙일보 ‘멈춰! 학교폭력…학교·가정·사회 세 바퀴 운동’에 독자들의 e-메일이 답지하고 있다. 딸이 겪은 학교폭력과 극복 경험, 애절한 심경을 담은 엄마의 사연을 소개한다.


멈춰! 학교폭력 ⑦ 왕따 딸 둔 엄마의 편지

아이 둘을 둔 엄마입니다.



결혼 전 8년간 간호사로 일했습니다. 분만실에 청바지 입고 친구와 아이 낳으러 왔던 여중생과 그 학생의 엄마를 잊을 수 없습니다. 학생의 엄마는 병원 연락을 받고서야 딸의 임신을 알았답니다. 하지만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제 인생에서 가장 아팠던 때를 떠올립니다. 저의 중학생 딸을 따돌리고 폭행한 아이들과 무관심으로 일관한 선생님, 자기 아이 일이 아니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외면하던 학부모와 학생들 속에 제 기억 시계는 멈춰 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얼굴이 빨개져 뛰어들어왔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예닐곱 명에게 뺨을 맞은 겁니다. 아이 손을 잡고 쫓아가 아이들에게 물으니 자신들을 보고 웃어 때렸다더군요. 속으론 패주고 싶었습니다. 어른이라 그럴 수도 없더군요. 부모에게 떠밀리듯 가해 학생들은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선 따돌림과 험담이 시작됐습니다. 일부러 이사를 갔고, 아이는 남녀공학 중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말수가 적어지고 좋아하던 책 읽기에 집중을 못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니 ‘왕따’당하는 속내를 털어놓더군요.



1학년 수련회에서 여학생 무리 맨 뒤에 있던 딸의 뒤꿈치를 남학생들이 가격하는 바람에 인대를 다쳤습니다. 식사시간에 다리를 절며 담임에게 말했지만 병원에 데려가지도, 괴롭힌 아이들을 훈계하지도 않았더군요. 학교에 가 선생님을 뵈니 “몰랐다” “장난이었을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아이가 겪어온 고통을 말하자 “어머니가 나서면 아이들이 더 따돌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교사인데 무엇이 두렵고 그렇게 귀찮은 걸까요.



‘우리 아이가 제발 친구 한 명만, 한 명만 사귀게 해주세요….’ 교회에 갈 때마다 울음을 참으며 기도했습니다. 등·하교를 아이와 함께해봤지만 교묘한 따돌림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해결책은 뜻 밖의 곳에서 나왔습니다. 제 사정을 전해들은 한 엄마의 소개로 아이 학교에서 ‘일진’을 했던 고교생을 만나 부탁했습니다. 무서운 선배가 하굣길 딸 옆에 나타나 “그러지 말라”고 하자 가해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지더군요. 그것을 시작으로 아이의 영혼은 조금씩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아주 긴 중학교 3년이 지났습니다.



집단 따돌림은 아이들을 어디에도 설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생각해 보세요. 친구 하나 없는 공간으로 내몰리고, 어울리려는 아이마저 못 놀게 하면 어떨지를요. 고교생인 딸은 잘 생활하지만 성장기 아이의 능력은 70%가량 줄어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가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피붙이로서 가까이에 피해를 본 학생이 있나요. 깊이 들여다보세요. 그곳엔 고통의 피가 멎지도 못하고 흐른답니다. 어린 영혼들이 얼마나 더 희생돼야 세상이 바로 설까요. 지금이라도 우리가 바뀌면 안 될까요.



제언하고 싶습니다. 가해 학생을 제재할 법이 강해서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줬으면 합니다. 선생님들이 학생을 제대로 훈육하도록 교권과 교칙을 바로잡아 주십시오. 학부모가 자기 아이를 잘 관찰하고 교육하도록 학부모 소양 훈련제도가 생겼으면 합니다. 청소년을 선도하는 사람에게 사회가 보상을 해줍시다.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따귀를 맞고 발로 차이는 자신을 보면서 피해 학생들은 자존감을 잃어버립니다. 그게 심해지면 존재 가치를 찾지 못해 목숨을 끊는 겁니다. 속을 터놓을 사람이 생기면 죽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말하지 않는다면 많이 안아주세요.



중앙일보가 ‘멈춰! 학교폭력’ 운동에 나서줘 감사합니다. 아이들을 위한 캠프가 생겨 강사가 필요하다면 맨 먼저 달려가겠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살릴 기회,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서울 에서 50세 엄마가



멈춰! 학교폭력 동참하려면



멈춰! 학교폭력 운동에 공감하는 분들은 폭력 근절 경험담과 노하우, 제언 등을 e-메일(school@joongang.co.kr)로 보내 주세요.



동참 기업·기관·단체 명단



법무부, 여성가족부, 서울· 경기 ·강원 ·경남 ·경북 ·대전 ·충남 ·충북 ·전남 ·제주 교육청, 춘천교육지원청, 서울시의회, 서울강남구청, 서울지방경찰청, 대전지방경찰청, 충북지방경찰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한민국교원조합,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한국청소년상담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대한태권도협회, 청소년폭력예방재단, 메가스터디,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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