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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17) 김우중과 나 <1> 대우 운명의 날

중앙일보 2012.01.12 00:00 종합 10면 지면보기
1999년 8월 26일 대우그룹은 워크아웃을 신청한다. 벼랑 끝 선택이었다. DJ 정부로서도 워크아웃을 하자니 시장에 미칠 충격이 두렵고, 안 하자니 부실채권을 처리할 방법이 없던 때였다. 신청 전날인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재계 간담회에서 김우중 당시 대우 회장(오른쪽)이 이기호 경제수석(왼쪽)과 대화하다 눈을 감고 있다.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1999년 8월 26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서근우 제3심의관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올 것이 왔다, 간신히 혈색 돈 시장에 ‘대우 폭탄’



 “김우중 회장이 워크아웃을 받아들이겠답니다.”



 서근우는 짐짓 무심한 표정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속으로 깊은 숨을 들이켰다.



 “누구한테 전갈이 온 거지?”



 “장병주 ㈜대우사장이 좀 전에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 신청서를 내겠다고요.” 고교 2년 후배인 장병주와는 오랜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다.



 “김 회장은?”



 “결정하고 출국했답니다. 대표이사 인감을 장 사장이 직접 찍겠답니다.”



 “그래…. 알았어.”



 김 회장이 결국…. 마음이 복잡하게 일렁인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첫째였다. 둘째는 불안감, 이제 막 체력을 회복하기 시작한 시장이 이 큰 시련을 견딜 수 있을까. 대우가 진 수십조원의 빚 중 절반 이상은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이었다. 그걸 사들인 건 일반 투자자들이다. 조금만 잘못 손을 대도 시장이 완전히 마비될 터였다. 외환위기 후 1년 반, 시장에 간신히 혈색이 돌기 시작할 때였다. 그런데 새 폭탄이 터지는 것이다.



 서근우는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워크아웃을 책임지고 있던 이성규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도 마찬가지였다. “차근차근 순리대로 하면 됩니다. 준비는 다 돼 있습니다.” 얄밉도록 침착했다. 연부역강(年富力强)인가. 나는 갓 마흔인 서근우와 이성규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기야 이왕 대우를 처리할 거라면 워크아웃밖엔 방법이 없었다. 김 회장은 “채권단 손에 그룹을 넘기느니 차라리 법정관리로 가겠다”고 버텨왔다. 하지만 법정관리는 대우 처리에 적합하지 않았다. 법원이 기업 구조조정을 전담하기 때문에 기존 경영진은 아웃된다. 채무도 일제히 동결된다. 금융 거래뿐 아니라 일반 영업 거래까지 중단되는 것이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대우 채권이 동결되면 시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을 것이었다. 대우는 구멍가게가 아니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법정관리로 가면 처리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선 안도의 한숨도 나왔다. 김 회장이 워크아웃을 받아들임으로써 대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미 어느 정도 계획은 섰다. 급한 불만 꺼주면 계열사들은 대부분 회생할 것이다.



 이때까지도 김 회장은 대우를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대우차는 자기 손으로 살리겠다며 DJ를 설득하고, 백방으로 뛰었다. 자신이 아니면 대우차를 살릴 사람이 없다고 믿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대우차는 김 회장이 직접 세계 곳곳을 뛰며 만들어냈다. 어디에 어떤 자산이 있고, 어떤 빚이 있는지, 어느 나라 어느 지도자와 어떤 이면 계약을 했는지, 이런 일들은 오직 김 회장만 꿰고 있다. 결자해지, 김 회장이 풀지 않으면 대우차를 풀어낼 사람이 없다.’ 몇 차례 김 회장을 만나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기도 했다. 워크아웃도 그런 식으로 풀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김 회장의 해외 도피로 물거품이 되고 만다. 워크아웃을 받아들이고 한 달여가 지난 10월 11일. 김 회장은 중국 출장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김 회장은 6년의 세월을 해외에서 전전한다. 그의 출국 직후 삼일회계법인은 대우그룹 예비 실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우중 회장이 십수조원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내용이다. 무척 공교로운 일이다. 나는 이 발표가 경솔했다고 생각했다. 결론이 너무 빨랐고,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 회장 문책론이 불거지고 대우 워크아웃은 궤도를 크게 벗어나고 만다.



 지금도 궁금하다. 왜 김 회장은 돌아오지 않았을까. 내게는 “끝까지 대우차를 책임지고 살리겠다”고 했던 그다. 누가 그에게 해외 도피를 권했을까. 김 회장이 떠나고, 대우 워크아웃의 핵심이던 대우차 구조조정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때 김 회장이 떠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대우차를 끝까지 책임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김 회장을 떠올린다. 그때마다 30여 년간 쌓은 그와의 인연이 한꺼번에 뒤섞여 떠오른다. 76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입고 있던 말쑥한 검은 양복, 80년 말 미국 뉴욕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며 내밀던 손. 82년 수단과 리비아·나이지리아를 함께 헤집고 다니던 기억, 그리고 마지막까지 내 앞에서 “대우는 문제 없다”고 큰소리치던 당당함.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고, 또 야속하다.



등장 인물



▶이성규(53) 현 연합자산관리 사장
=나와는 한국신용평가에서 함께 일했다. 1998년 초 영화 공부를 위해 유학길에 오르려던 그를 “기업구조조정을 도와달라”며 주저앉혔다. 금융감독원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구조조정 실무를 진행하다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 이후 국민은행 부행장, 하나은행 부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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