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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삶 강영우 박사 ‘가진 것 다 주고 떠나렵니다’

중앙일보 2012.01.12 00:00 종합 30면 지면보기
강영우 박사가 9일(현지시간) 워싱턴 국제로터리재단 평화센터에 장학금 25만 달러를 기부하고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앞줄 왼쪽부터 강 박사의 부인 석은옥 여사, 강 박사, 딕 손버그 전 미국 법무장관. 가운데줄 왼쪽 둘째부터 강 박사의 차남 크리스토퍼 강 백악관 선임법률고문, 장남 폴 강 안과전문의.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에 올 겨울 들어 첫 눈이 소담스럽게 내린 9일 밤(현지시간).

미 국제로터리재단에 보은의 25만 달러 기부



 13번가 한 로펌 사무실에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부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은 강영우 박사(68·전 백악관 장애인정책위원회 위원·차관보급)가 국제로터리재단 평화센터에 평화장학금(Peace fellowship)으로 25만 달러(2억9000만원)를 기부하는 현장이었다. 전보다 야윈 모습으로 부인 석은옥 여사의 부축을 받고 참석한 강 박사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세상에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았다”며 “감사의 뜻으로 되돌려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박사는 40년 전인 1972년 국제로터리재단의 장학생으로 뽑혀 피츠버그대로 유학 올 수 있었다. 그 곳에서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 학위(교육철학)를 딴 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 장애인정책위원회 위원이 됐다.



 강 박사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없애고 평화를 만들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기부하고 싶었다”며 “평화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 학생들을 위해 사용했으면 한다는 뜻을 재단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두 아들인 폴 강(한국이름 진석) 안과전문의와 크리스토퍼 강(진영) 백악관 선임법률고문도 강 박사를 거들었다. 강 박사가 20만 달러를 내고 두 아들이 2만5000달러씩을 보탰다고 한다. 강 박사는 “한도를 채우기 위해 아들들에게 부탁했는데 아버지의 뜻을 흔쾌하게 받아줘 너무나 고맙다”고 했다.



 둘째 아들인 크리스토퍼 강은 “40년 전 아버지가 그 장학금을 받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 가족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며 “작지만 갚을 기회를 갖게 돼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장학금은 앞으로 듀크대와 노스 캐롤라이나대에 설립된 로터리재단 평화센터 학생들의 학비로 쓰여진다.



 이날 행사에는 강 박사의 오랜 친구인 딕 손버그 전 법무장관 부부와 피터 카일 미 의회 로터리클럽 총재 등도 함께 했다. 손버그 전 장관은 연방검사 시절인 1975년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어느 날 우산을 쓰고 흰 지팡이에 의지해 캠퍼스를 걷고 있던 ‘낯선 한국인 시각장애 학생’을 차에 태워준 인연으로 36년간 강 박사와 우정을 쌓고 있다. 강 박사를 부시 전 대통령에게 추천한 이도 손버그다.



그는 “닥터 강은 신체적 장애는 장애가 아니라는 걸 삶으로 보여줬다”며 “기부 소식을 듣고 정말 가슴이 따뜻해졌다”고 찬사를 보냈다.



 강 박사의 기부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손버그 전 장관이 관여하는 피츠버그대 공공정치학·법학 포럼에도 2만5000달러를 기부했다. 미리 작성한 유언장에는 모교인 연세대에 4억여 원을 기증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고 한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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