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영아의 여론女論] 소가 울겠네

중앙일보 2012.01.12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명절에도 내가 팔리고 계집 얻는 데도 내가 팔리고 투전 빚에도 내가 팔리고 상처(喪妻)에도 내가 팔리게 되는구나! 얼마나 기가 막혔겠느냐? 너희 놈 같으면 벌써 자살한 지 오래겠다. 그래도 조물주의 정칙(定則)에 의하여 직분을 다하노라 여태껏 살아왔다. 5월 초 열흘날 미명(未明)에 나는 주인에게 끌려 남(南)시장으로 팔리러 갔다. 장판으로 팔리러 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와 같이 팔리려고 온 동무가 우마장(牛馬場)에 가득히 들여 매인 것을 보고 나는 끔쩍 놀랐다. 정말 눈이 뚱그레졌다. 그러나 나만 팔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소라는 명색 가진 친구는 다 같이 팔려 다니는 놈이로구나!”(누렁이, ‘나는 스무 살 먹은 황소-나의 이십 평생을 들어 사람 놈들에게’, 『개벽』, 1925.1)



 잡지 『개벽』은 1925년 1월호에서 을축년(乙丑年) 새해를 맞아 소(牛)와 관련된 글을 여러 편 실었다. 위의 인용한 글도 그중 하나로, ‘누렁이’라는 황소가 화자가 되어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잡지에 실린 다른 글에선 조선을 이렇게 표현했다. “농업국인 동시에 천연의 풍토, 기후, 목초 등이 다 축우(畜牛)에 적의(適宜)하여 자래로 소의 산출이 심다(甚多)하고 체격품질이 또한 양호하여 저쪽 세계에서 명물로 회자되는 스페인의 소를 훨씬 능가하고 따라서 소에 관한 전설, 속담, 동화, 기타 여러 가지 언어가 심다한 나라이다.”(청오, ‘우보(牛譜)’,『개벽』, 1925.1) 그렇게 우리는 오랜 세월 소를 시켜 농사를 짓고, 소를 잡아 단백질을 보충해왔다. 그런데 소의 입장에선 이러한 상황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주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을 하다가도 필요에 따라 언제든 팔리거나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소들의 운명은 실로 비참한 것이라고 ‘누렁이’는 말하고 있다.



 최근 사료값은 급등하는 데 반해 한우값은 폭락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어서, 정부는 심지어 한우값의 안정을 위한 ‘암소 도태 장려금’을 마련해 약 30만~40만 마리의 암소들을 강제 도살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고 한다. 어차피 도축하기 위해 키워졌던 소들이라고는 하지만 ‘가격’을 위해 그 ‘생명’들을 무자비하게 없애려 하는 지금의 상황은 인간의 끔찍한 이기심과 잔혹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 소들은 어떤 심정일까. 말은 못하지만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에 떨고 있지 않을까. “사람들아! 체격이 너희만 못하단 말이냐? 이목구비 수족이 너희만 못하단 말이냐? 힘이 너희만 못하단 말이냐? 심성이 너희만 못하단 말이냐? 웬일이냐? 말은 못하고 글은 못하고 너희 같이 허위와 간교는 못 부린다만, 마찬가지 동물이요 마찬가지 생(生)을 위해 세상에 사는 바에 어쩌면 그다지도 잔인포학하단 말이냐!”라고 했던 ‘누렁이’처럼.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