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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잡은 시민 “공무원들 날 무시”

중앙일보 2012.01.12 00:00 종합 25면 지면보기
11일 서울 청계광장에 첫선을 보인 시민발언대 ‘할 말 있어요’. 시민발언대는 매주 수요일 청계광장에서 운영된다. [김도훈 기자]


시민들은 할 말이 많았다. ‘끝없이 계속되는 이 겨울을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연설문을 꼭 쥐고 11일 서울 청계광장에 마련된 ‘할 말 있어요’ 단상에 오른 시민 김동해(65)씨. 김씨는 “서민을 힘들게 하는 경제위기가 닥쳤다. 젊은이들이 열심히 절약해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10분간 거침없이 이어갔다. 그는 “앞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여기서 은퇴자·경제·부동산·복지 문제에 대해 연속 발언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씨의 얼굴은 칼바람에 빨갛게 얼어붙었지만 표정만은 뿌듯해 보였다.

청계광장 시민발언대 첫날
“35년 재산세 냈는데 필지 사라져”
호통·호소·분통 … 10분씩 릴레이
담당부서에 녹화 전달, 시정 반영



 ‘할 말 있어요’는 서울시가 이날 운영을 시작한 시민 발언대다. 시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면서 19세기 중반부터 영국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운영되는 발언대 ‘스피커스 코너’를 본떠 만들었다. 누구나 아무 때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런던과 달리 서울에선 인터넷을 통해 사전에 신청해야 한다. 발언자로 선정되면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10분간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 수 있다. 주제에 제약은 없다. 하지만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등 정치적·반사회적 발언은 금지돼 있다. 특정인을 비방하거나 욕설을 하면 마이크가 자동으로 꺼진다.



 이날 발언자 중 상당수는 서울시와 각 구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원순 시장은 시민이 서울의 주인이라고 했는데 구청 직원들이 날 무시하고 목소리가 크다고 나무랐다”(66세 조연상씨), “서울형 어린이집에선 만 2세, 3세 통합반을 만들 수 없는데 이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불합리한 방침이다”(38세 황혜란씨)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발언자 중 최고령자인 박상용(81)씨는 “35년간 재산세를 냈는데 알고 보니 필지가 사라진 땅이어서 울화통이 터진다”며 “공무원들이 서류만 보지 말고 현장에 나가 살펴야 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 밖에 박 시장에 대한 애정을 밝힌 시민(박민수씨·60), 자신이 만드는 첫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싶다고 나온 지상파 라디오 프로듀서(전여민씨·32세)도 있었다. 발언대에 선 시민들은 한결같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니 후련하고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단상에 오른 시민 16명 중 11명은 60세 이상이었다. 김혜정 현장소통팀장은 “우리 사회에서 어르신들이 발언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발언을 듣고 공감을 표하거나 반론을 제시하는 시민은 현장에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간혹 신기한 듯 쳐다보는 행인은 있었지만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날이 너무 춥고 홍보가 부족해 의견을 교환할 청중이 안 생기는 것 같다”며 “시민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날 시민들의 발언을 녹화해 해당 부서에 전달, 시정에 반영할 예정이다.



전영선·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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