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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희 ‘원샷 인사’… 285년 벌었다

중앙일보 2012.01.12 00:00 경제 1면 지면보기
조 행장이 계산한 인사철 허비 시간


1910명 한꺼번에 승진·이동

임직원 1만400명X10일 걸쳐 인사=10만4000일(285년)




조준희 기업은행장
“해마다 인사를 하느라 허비한 시간이 285년입니다. 고객을 위해 이 시간을 쓰면 못할 일이 뭐겠습니까.”



 조준희(58) 기업은행장이 11일 한국 금융사에 유례가 없는 인사 실험을 시작했다. 이른바 ‘원샷 인사’다. 기업은행은 이날 정기인사에서 전 직원 1만400여 명의 20%에 가까운 1910명을 한꺼번에 승진·이동시켰다. 대개 본부장급 이상과 지점장 이하로 나눠 일주일 이상에 걸쳐 나눠 하던 관례를 깨고 부행장부터 계약직 직원까지 하루에 발령을 낸 것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예전처럼 열흘에 걸쳐 단계별로 인사를 하면 임직원 1만400여 명이 10만4000일, 285년을 허송하는 셈”이라며 “이 시간을 아껴 남들보다 앞서가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조 행장은 기업은행의 50년 역사상 첫 내부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인사부 행원과 인사담당 임원을 지낸 경험도 있다. 그런 그가 보기에도 은행 인사엔 이해하지 못할 구석이 많았다. 인사철엔 ‘개점휴업’ 상태가 되는 걸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첫째였다. 조 행장은 “말단 행원 때 ‘한 방에 해서 일하게 하자’고 건의했다가 상사에게 된통 혼난 뒤로 30년간 이를 고쳐보자는 꿈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행장 취임 직후 실무진에게 준비시켜 보니 그동안 발전한 정보처리와 전달, 소통 기술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판단도 섰다.



 원샷 인사는 청탁이나 파벌 조성을 막는 방패이기도 하다. ‘증권맨은 인맥을 영업에 활용하지만, 은행원은 인사에 동원한다’는 말이 있다. 인사를 여러 번에 나눠 하면 그만큼 능력 외에 고려할 점이 많아지더라는 게 조 행장의 경험이다. 아픈 기억도 있다. 인사담당 임원 시절 그는 본부장들에게 함께 일할 부하 직원을 데려다 쓸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결과는 기대와 딴판이었다. 그는 “나중에 보니 지연이나 학연, 심지어 군대 인연이 있는 부하들만 데려다 쓴 경우가 많았다”며 “이를 되돌려놓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조 행장은 아예 일종의 ‘상피제’를 도입했다. 비슷한 배경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부서나 지점에 몰리지 않도록 인사 프로세스를 제도화했다. 그는 “본점과 지역본부의 책임자와 인사 담당자가 모여 검증하는 이 과정이 열차 운행표보다 훨씬 복잡하다”며 “공정한 환경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직을 하이브리드(잡종)로 만드는 이런 과정이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고객을 상대로 영업하는 은행엔 큰 강점이 된다”고도 했다.



 스스로도 청탁을 물리치고 불필요한 소문을 차단하는 데 신경 썼다. 인사 담당자를 행장실로 부르지 않고, 본인이 직접 인사부로 찾아가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보고를 받았다. 부행장 승진 대상자에게도 방이 붙기 한 시간 전에야 귀띔했다. ‘행장실에 누가 다녀갔다더라’는 말조차 금세 퍼지는 조직의 특성 때문이었다.



 조 행장은 이번 인사에서 상당한 권한을 지역본부에 줬다. 조 행장은 “평소 ‘연임하지 않겠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으니 꿈을 키워라’고 공언해 왔다”며 “약속을 지킨 뒤 박수 받고 떠날 것”이라고 다짐했다.



기업은행의 인사 실험



① 285년을 버는 ‘원샷’ 인사



“1만여 명의 직원이 인사 때면 열흘간 일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 이들이 허송하는 열흘은 10만4000일, 285년.



② 청탁 끼일 틈 없는 전격 인사



임원 승진자도 한 시간 전 통보. 임직원의 희망은 최대한 반영하되 외부 청탁은 행장부터 배격.



③ 지역에 권한 주는 위임 인사



지점장까지만 근무지 지정, 부지점장 이하는 본부장에게 배치권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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