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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요리·공예 … 재능 기부 나선 아빠·엄마들

중앙일보 2012.01.11 05:10 Week& 1면 지면보기
충남 서천군 한산읍에 있는 한산초는 학부모 75명이 동아리 활동으로 재능 기부를 한다. 4일 오후 ‘멋쟁이 손솜씨’ 수업에 교사와 학생으로 참가한 김미영·박남준 모자, 김정완·심창현 모자, 유수경·이가인 모녀(왼쪽부터). [김경록 기자]

전교생 101명 농촌학교에 ‘학부모 선생님’ 75명 떴다



“선생님, 모시 조각 끝이 잘 안 맞아요. 봐주세요.” 4일 오후 박남준(충남 서천 한산초 3)군이 방학인데 학교에 나왔다. ‘멋쟁이 손솜씨’ 동아리 수업을 받기 위해 박군 외에 이 학교 학생 20여 명이 등교했다. 이날은 지역 특산품인 모시로 휴대전화 액세서리 만들기를 배웠다. 손끝이 여물지 않은 박군은 연방 선생님을 불렀다.



박군이 선생님이라 부르는 사람은 그의 엄마 김미영(38·여·충남 서천)씨다. 김씨를 포함한 3명의 학부모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 동아리는 십자수, 뜨개질 등 손으로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만든다. 학부모 십여 명이 돌아가며 학생들을 가르치러 매주 한 번 학교 문턱을 넘는다. 2년 전부터 손솜씨와 배드민턴을 배우고 있는 지경진(5학년)양은 “학원에서 배울 때와 내용은 비슷하지만 잘 아는 사람에게 배우니까 질문도 편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독서 동아리 ‘엄마와 책사랑’은 김아진(36·여)·유수경(38·여)씨가 맡았다. 학부모회 대표인 이경주(42)씨는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러 서둘러 업무를 마치고 학교에 왔다. 하지만 운동장에 눈이 많이 쌓여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축구부 학생들과 아쉬움 속에 발걸음을 돌렸다.



충남 서천군 한산읍에 있는 한산초. 전교생이 병설 유치원생 9명을 포함해 101명이 전부인 작은 농촌학교다. 101명 모두 월~토요일까지 매일 방과 후 진행되는 동아리 활동에 참여한다. 대부분 2~3개 이상의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수업 진행은 이 학교 학부모들의 몫이다. 75명의 학부모가 보수 없이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한산초가 동아리 활동으로 학부모 재능기부를 시작한 것은 2년 전. 김기오 교장은 “학교와 학부모 사이의 소통 기회를 만들고, 학부모가 참관이 아닌 참여하는 학교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부모회를 담당하는 정은경 교사는 “농촌이라 교육시설이 부족하지만 학교와 학부모가 힘을 모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학부모 재능기부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한산초는 지난해 말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학부모 학교 참여 우수사례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매 학기 초 학부모들이 모여 교육과정을 논의하고, 역할을 분담한다. 아빠들은 축구·배드민턴·학교농장·생태탐사·국토순례처럼 전문성과 체력이 필요한 수업을 맡는다. 엄마들은 독서를 비롯해 손솜씨·문화탐방·요리왕 등 자상한 손길이 필요한 교육봉사를 한다.



김아진씨는 “가장 어려운 점은 시간을 내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농번기 땐 일주일에 한 번 참여하더라도 짬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열성적이다 차츰 참여가 뜸해지기도 한다. 평일에 바쁜 학부모는 주말에 영화나 연극 관람, 체험활동을 데리고 다닌다. 조부모도 예절교육·바둑·전통공예 등 재능기부에 나선다. 조성우(4학년)군은 “내가 아는 분들이 수업을 하면서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친구·선후배랑 같이 배우니 수업이 늘 재미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학부모 75명이 봉사를 하고 있지만 시작은 16명에 불과했다. 첫 석 달은 매주 한 번씩 모여 회의를 했다. 이씨는 “교육과정이 어떻게 달라졌고, 체험활동이 왜 중요한지, 우리가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설득했다”고 말했다. 집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농사일을 학교에서 가르친다며 불만을 토로하던 한 학부모는 교육과정을 이해한 후부터 지금은 손수 학생들을 데리고 국토순례를 떠날 만큼 열성적이다. 그는 “학부모들의 재능기부를 끌어내려면 우선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와 공감 형성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학부모들의 재능기부로 충남 한산초는 열악한 농촌마을의 교육환경을 극복해가고 있다.



재능기부가 사회 전반에 확대되면서 학부모들의 재능기부도 분야와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전남 몽탄초는 체험학습·북아트·목공예·고장탐방 등의 방학 프로그램을 학부모가 운영한다. 학교와 연계해 토요방과후학교 프로그램도 이끈다. 북인천중은 기초부진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높이기 위해 학부모 학습지원 멘토링을 운영한다. 안양 귀인초는 엄마들이 영어 정규수업에 직접 참여한다. 2006년 4명으로 출발한 ‘귀인초 학부모 영어보람교사’는 현재 16명이 활동 중이다. 올해 4년차인 이수정(42·여·안양시 동안구)씨는 “영어활용 능력을 가진 엄마들이 촌극 수업에 참여해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며 “엄마들이라 학생들도 수업내용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학교들은 강연이나 탐방으로 학생들이 직업 세계에 대한 지식을 갖도록 아빠들이 재능기부에 나섰다. 신구중과 신사중은 아빠들이 학교를 방문해 진로를 지도하고 있다. 대청중은 ‘진로교육 품앗이’를 한다. 아빠들이 학교를 찾아 강연을 하거나 직장으로 학생들을 초청하는 것이다. 지난달에도 중3 학생 8명이 학부모인 성균관대 의대 김영호 교수의 초청으로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했다.



지역 교육청들도 학부모 재능기부단을 적극 모으고 있다. 전북교육청은 지난해 말 학부모 재능기부를 받아 나흘 동안 전통매듭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장분이 학부모지원 전문가는 “학부모의 봉사 기회로 학교의 재능기부 문화가 확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전시교육청은 지난달 학부모 500여 명으로 구성된 학부모재능기부봉사단의 발대식을 열었다. 대전시교육청 학교정책담당관실 이용복 사무관은 “올해부터 주5일제 수업 확대로 방과후 활동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학교 지원 활동과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봉사단을 구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학부모 재능기부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알 수 있고, 재능기부는 각 시·도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수시로 신청하면 된다.



서천=박정현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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