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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기업 “노동·금융 문턱 높아” … 규제 대못 뽑아야 내·일 커진다

중앙일보 2012.01.11 03:00 종합 14면 지면보기
올리비에 무루 아지앙스(Asiance) 대표와 직원들이 회사 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의 회사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뿐 아니라 다양한 무형의 가치를 제공한다. 왼쪽부터 올리비에 무루 대표, 이원용·이현정 사원, 김보선 이사, 로랑 르 그라베랑 사원. [김도훈 기자]
내수를 키우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을 세계인이 몰려드는 ‘글로벌 허브’로 바꿔야 한다. 외국의 인재와 소비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마음껏 쓰고, 놀고, 일할 수 있도록 판을 벌이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단순한 규제 완화를 넘어 국가 개조 수준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올 대선에 나설 지도자는 그 비전과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글로벌 인재, 쓰고 놀고 일하게

특별취재팀=김종수·김영훈·채승기·김경희·이가혁 기자, JTBC 편성교양국다큐멘터리 ‘내·일’ 제작팀



“지금 저보고 한국에서 창업하라고 하면 못 했을 겁니다.”



 2002년 한국에서 IT 업체 아지앙스코리아를 세운 올리비에 무루(38) 대표는 대뜸 한국에서 청년, 특히 외국인이 창업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아시아(Asia)와 프랑스(France)를 합친 아지앙스(Asiance)는 불가리·구찌·롱샴 같은 글로벌 브랜드의 한국 전용 웹페이지를 디자인하고 이들 제품의 온라인 마케팅을 맡는 회사다. 무루 대표는 외국인 인재가 국내에 들어와 창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낸 대표적 사례다. 아지앙스 직원 17명 가운데 14명이 한국인이다. 비록 적은 인원이지만 그가 국내에서 회사를 세우지 않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일자리다. 그는 2008년 기업활동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서울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시 명예시민이 됐다. 그런 그가 창업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10년 전 만해도 2500만원이면 창업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1억원이 있어도 못 한다”며 “금전적 장애물과 각종 규제가 젊은 글로벌 인재들이 한국에 오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말했다. 무루 대표는 국내 콘텐트를 유럽에 소개하고 유럽 기업의 한국 투자를 돕기도 한다. 그는 “외국인 창업이 직접 일자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아지앙스를 거쳐간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무대로 진출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파급효과도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우리나라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외국인투자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상당수 기업이 노동(40.2%)과 금융(38.1%) 분야에서 규제장벽이 높다고 밝혔다. 30.7%의 기업이 ‘외국 본사보다 국내의 규제장벽이 높다’고 답했다.





 해외의 수요를 국내로 끌어들여 내수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의료관광과 복합리조트 등 내수 서비스산업을 키워 해외 소비자를 유치할 수도 있고, 아지앙스처럼 외국인 인재가 국내에서 활발한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외국 소비자와 인재들이 한국에 들어와 마음껏 쓰고, 놀고, 일할 수 있게 만들면 자연스레 내수 규모도 커지고 일자리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바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외국인의 국내 체류와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각종 규제의 대못을 뽑아야 하는 것은 물론 외국인을 대하는 국민의 의식도 달라져야 한다. 언어장벽과 숙박시설, 외국인을 위한 교육과 의료 서비스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도 설립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도덕과 청결을 중시하는 국가 이미지에 카지노를 허용할 수 없다는 국민적 여론이 거셌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포화 상태에 이른 금융산업과 정체된 관광산업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했다. 리셴룽 총리는 2004년 8월 취임 직후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 사업을 미국 등 해외 자본을 대상으로 공모했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 이미지도 바꿀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07년 589만 명이었던 방한 외국인은 지난해 895만 명(11월 기준)을 넘어섰다. 특히 중국 관광객은 최근 5년간 매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국내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대구시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에서 김정철 교수가 인도 환자에게 모발 이식을 시술하고 있다. 모발 이식술은 고부가가치 의료산업으로 매년 수백 명의 외국인 환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대구 경북대 모발이식센터도 그중 하나다. 이 병원은 지난해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해 경북대병원에서 대구 시내의 호텔인 대구시티센터(노보텔)로 모발이식센터를 확장 이전했다. 외국인이 편하게 호텔에 머물면서 시술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구시는 2009년 메디시티 대구선언과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를 계기로 의료관광사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반면에 외국인 투자유치를 목표로 의욕적으로 시작한 인천·광양만·부산진해 등 경제자유구역은 실적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2006~2010년 전체 외국인투자 신고액 580억 달러 가운데 경제자유구역의 유치액은 단 24억 달러로 전체의 4%에 불과하다. 경제규제구역이란 오명을 들을 정도로 각종 규제에 막혀 외국인이 투자할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 거주에 필수적인 의료시설조차 갖추지 못했으니 외국인들이 올 리 만무하다. 송도 국제병원 예정 부지와 제주 투자개방형병원 부지는 여전히 잡초만 무성하다. 인천 송도의 채드윅 국제학교는 재학생 474명 중 83%(394명)가 한국 학생이고 그나마 중학교 과정까지밖에 없어 외국인의 발길을 돌리게 한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인천은 국내 도시가 아니라 세계적 도시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규제 때문에 외국인 투자유치에 밀리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결국 낡은 규제와 고루한 인식이 문제다. 세계인이 몰려드는 ‘글로벌 허브’ 국가를 만드는 것이 내수를 키우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라면 싱가포르처럼 국가개조 수준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내수와 일자리에 국가의 내일이 달렸다면 자잘한 규제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올 대선에 등장할 정치 지도자는 그 비전과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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