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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16) 삼성차 법정관리와 노무현

중앙일보 2012.01.11 00:00 종합 10면 지면보기
1999년 6월 말, 삼성자동차가 법정 관리를 신청하자 부산 민심은 벌집을 쑤신 듯했다. “호남 정권이 부산 죽인다”는 반발에 정부는 대책 마련에 고심한다. 같은 해 7월 5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참석자들이 부산 공장의 정상 가동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 김종필 국무총리, 정덕구 산업자원부 장관. [중앙포토]



빅딜 표류 반년 … 나 찾아온 이학수
“삼성차는 법정관리로 가겠소”
부산이 발칵 뒤집혔다
20일 뒤 내게 온 노무현 의원은 …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이 여의도 금융감독위원장실을 찾아온 건 1999년 6월 11일이었다. 삼성과 대우 빅딜 발표 후 6개월을 넘긴 시점, 우리는 서로 만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김태구 대우 구조조정본부장과 함께 청와대 서별관에서 벌였던 그 지겨운 실랑이 때문이다. 몇 날 밤을 끌었던가. 협상은 한 발짝 나가는가 싶으면 두 발짝 돌아왔다. 두 차례나 “협상 타결”을 발표해놓고도 6개월 넘게 가격을 정하지 못했다. 오늘은 또 무슨 얘기인가. 이학수는 소파에 앉으면서 바로 말을 꺼냈다.



 “삼성차는 법정 관리로 처리하겠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진심입니까?”



 이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빚은 어떻게 할 겁니까. 4조원이 넘지 않습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그는 이건희 회장의 사재(私財) 출연을 얘기했다. 삼성생명 주식 400만 주를 주당 70만원씩 매겨 채권단에 내놓겠다는 것이었다. 2조8000억원 상당이었다.



 “그 방법이 최선이 아닐 겁니다.”



 “이미 결론 내렸습니다. 김중권 비서실장, 이기호 경제수석과도 협의를 끝냈습니다.”



 예견했던 바다. 빅딜은 애초 불가능하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6개월이 아니라 1년을 더 끌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시장에 미칠 충격이 두려웠다. 삼성은 그렇다 치고 대우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대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삼성과 거래가 끝났다고 알려지면 시장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부산. 부산이 들끓을 것이다.



 예상대로였다. 6월 30일 삼성이 자동차 법정 관리를 발표했고, 부산은 뒤집혔다. “삼성차 법정 관리는 부산의 법정 관리다.” “호남 정권이 부산 협력업체를 다 죽인다.” 연일 시위가 일어났다. 여권 실세가 줄줄이 민심을 달랜다며 부산을 찾았다. 부산 기반의 민주당 인사들이 총동원돼 문제 해결에 나섰다. 목적은 하나였다. 공장을 다시 돌리는 것.



 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난 건 그때였다. 그는 ‘삼성자동차 문제해결 대책위원장’이었다. 처음 내 사무실을 찾아온 것이 7월 20일쯤. 나는 약간 긴장한 상태였다. 직원이 보고한 그의 평판 때문이다.



 “대우조선 노조 파업 때 고공 크레인에 올라갔을 정도로 굉장히 과격한 사람입니다.”



 나도 그가 기억났다. 5공 청문회 때 고함을 치며 명패를 던지던 장발의 젊은 의원. 그때 받은 인상은 ‘저렇게 흥분한 상태에서 말을 논리정연하게 또박또박 하다니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이 뒤집히고 말이 엉킬 텐데,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쨌든 보통 성격은 아니다.



 막상 사무실에 들어온 그의 표정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도 낮은 편이다. ‘항상 투사 모드는 아닌가보다.’ 긴장이 조금 누그러졌다.



 “위원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장이 왜 못 돌아가는 겁니까.”



 “아무래도 자금 지원이 부족해서일 겁니다. 삼성이 계속 돈을 넣어야 할 텐데….”



 “삼성을 움직여주십시오. 위원장님이 열쇠를 쥐고 있는 거 아닙니까.”



 “최선은 다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약속은 못 하겠습니다.”



 그는 30분 정도 대화를 나누다 떠났다. 내내 조곤조곤한 말투였다. 첫인상이 좋게 남았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그를 만났을 때, 그도 이때 만남을 언급했다. “그때 참 야무지게 대응을 하십디다.”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다.



 이후 그는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언제쯤 부산 공장이 돌아가느냐”고 물었다. 서너 번은 더 찾아와 “조업이 재개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광재 전 의원이 매번 그를 수행했다. 나는 김영재 대변인을 직접 부산에 내려보냈다. 금감위원장으로서 성의를 보인 것이다.



 이런 노력에도 삼성자동차는 프랑스 르노에 매각된 2000년에야 조업을 재개한다. 공장이 돌기 시작하며 부산 민심은 빠르게 회복됐다. 그걸로 부산이 입은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었다. 하지만 대우는 달랐다. 99년 6월, 삼성차의 법정 관리 선언은 대우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이미 깊은 늪에 빠져있던 대우에 더 이상 돈 들어올 곳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금융회사들은 앞다퉈 채권 회수 경쟁에 나섰다. 김 회장은 99년 7월 19일 사재 출연 등 비상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간은 이미 대우의 편이 아니었다.



등장인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16대 대통령.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1988년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정계에 입문한다. 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며 민주당 창당에 동참했고, 2002년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나는 99년 ‘삼성차 문제해결 대책위원장’이던 그를 처음 만났고, 2004년엔 재정경제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 그와 함께 일한다.



▶이광재(47)=35대 강원도지사를 지냈다. 1988년 노무현 당시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된 후 줄곧 그의 비서역을 맡았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당선됐지만 2011년 1월 대법원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확정, 도지사직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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