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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한 짱, 학교 맴돌며 700명에게 수억 뜯었다

중앙일보 2012.01.11 00:00 종합 16면 지면보기
유도 사범 출신의 이모(21·무직)씨. 그는 실업계 고교 재학 시절 서울 강남구·서초구 등 강남권 일대에서 유명한 싸움꾼이었다. 1m80㎝가 넘는 키에 몸무게 90㎏으로 건장한 체격의 이씨는 고교 시절 속칭 ‘대가리(학교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이)’였다. 당시 강남권에는 “이OO의 팔뚝은 소화기 굵기만 하다. 눈을 3초만 마주쳐도 피투성이가 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는 몇 개의 폭력조직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20여 개 중·고교 다단계식 관리
상납액 할당 안 가져오면 폭행
후배들에게 폭력 대물림
이모씨 영장, 6명 불구속 입건

 이씨는 2009년부터 자신을 따르는 동네 후배 김모(18·무직)군에게 금품을 주기적으로 상납하라고 협박했다. 그는 김군이 목표량을 채워오지 못하면 대리석 바닥에 업어치기 기술로 메다꽂았다. 주로 지시는 후배 구모(20·무직)씨를 통해 김군에게 전달됐다. 김군은 학교나 동네에서 알게 된 후배를 수시로 불러 금품 상납을 요구했다. 말을 듣지 않는 후배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서초구의 한 오피스텔이나 근처 공원으로 불러내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했다.



 김군은 자퇴 학생이나 중·고교 재학생 등으로 이뤄진 몇 개의 행동조직을 꾸렸다. 김군은 자신의 수첩에 할당량·마감시한·실행여부 등을 적어 이들을 관리했다. 김군 수하의 황모(17·무직)·신모(16·중3)군 등 ‘행동대원’은 강남권 중·고교를 구역별로 나눠 맡았다. 신군 등은 피해 학생들에게 “김OO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않느냐. 돈이나 옷을 내놓지 않으면 크게 보복당할 것”이라고 협박하거나 폭력을 쓰는 수법으로 금품을 뜯어냈다. 강남권 일대에선 김군이 ‘대가리’라는 소문이 퍼져 대부분의 학생이 김군의 이름만 들어도 겁을 먹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씨→구씨→김군→신군 등 행동대원’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방식의 폭력조직이 운영된 것이다. 경찰수사연수원 안흥진 교수는 “영화 ‘공공의 적 3’처럼 학교에서 싸움을 잘하는 것으로 소문난 학생은 폭력조직에서 먼저 손을 뻗친다”며 “학교 밖 폭력이 학교 안 폭력을 사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10일 10대 청소년들을 시켜 학생들의 금품을 빼앗아 오도록 한 혐의(상습공갈)로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김군을 같은 혐의로 구속하고 구씨와 황군·신군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강남구·서초구 등의 20여 개 학교에 재학 중인 7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피해액은 수억원에 이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부 피해 학생은 경찰 조사에서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 충동도 여러 번 느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 등은 현금보다는 고가 의류·전자기기를 선호했다”며 “학생들이 현금을 몸에 지니고 다니지 않고 학생이 부모에게 무리하게 돈을 달라고 하면 의심받을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현재 이씨가 성인 폭력조직과 연관돼 있는지를 조사 중이다. 또 성인 폭력배가 학교나 동네 후배에게 상납받는 방식으로 금품을 뺏는 사례가 다른 지역에도 있다는 피해자 진술을 바탕으로 서울 전역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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