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종 황제가 만든 활터 … 이젠 21세기 궁사 단련장

중앙일보 2012.01.11 00:00 종합 24면 지면보기
서울 종로구 인왕산에는 도심을 바라보며 활을 쏠 수 있는 황학정이 있다. 고종 황제가 경희궁에 세운 정자로 1922년 일제강점기 당시 사직동으로 옮겨 왔다. 황학정에서 5년째 국궁을 배우고 있는 김수한(43)씨가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기고 있다. [김태성 기자]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동 황학정. ‘휙~’ 하는 소리가 바람을 가른다. 화살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145m 너머 과녁의 한가운데 꽂혔다. 명중. 그러나 궁사는 환호하지 않는다. 약하게 떨리는 활시위를 가다듬을 뿐이다.

[서울 재발견] 사직공원 내 국궁장 ‘황학정’
일제시대 경희궁 헐리며 1922년 자리 옮겨



“국궁은 임금부터 선비까지 심신단련을 위해 했던 대중적인 운동입니다. 점수보다는 얼마나 몸과 마음을 다해 화살을 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활터의 가장 웃어른인 사두(射頭) 신동술(64)씨의 설명이다. 국궁은 우리나라의 활쏘기를 이르는 말이다. 서양의 양궁과는 활을 쏘는 방법이나 점수를 매기는 방법까지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이런 국궁의 메카가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안에 자리 잡은 황학정(黃鶴亭·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5호)이다. 전국적으로는 370여 개 국궁장이 있다.



 그 역사는 1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1898년(광무2) 고종황제 시대. 조총 등 신식 무기가 도입되면서 전국의 활터가 사라지게 됐다. 이를 아쉬워한 고종이 어명을 내려 경희궁 내에 만든 활터와 정자가 황학정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22년 민족문화 말살 정책에 따라 경희궁이 헐리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활터에 서면 과녁 너머로 도심의 고층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경치를 보거나 활을 쏘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아온다.



 아무나 활을 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사두 이종구(65)씨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고 배우겠다고 오는 사람도 많다”며 “하지만 국궁은 성인들도 최소 3개월 이상 수련을 거쳐야 활터에 설 수 있을 정도로 힘든 운동이라 초보자나 만 18세 이하 청소년 등에게는 활을 함부로 잡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갖추어야 할 예(禮)도 있다. 활터에 오르기 전과 후에는 황학정에 올라 고종의 어진(초상화)과 태극기에 절을 해야 한다. 활을 잡았다면 되도록 입을 열지 않는다.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예절을 중시하는 만큼 활터에 서는 위치와 시위를 당기는 순번도 나이에 따라 결정된다.



  과녁 3개를 두고 회원제로 운영되는 황학정에는 185명이 등록돼 있다. 남자는 4만원, 여자는 3만원의 월회비를 낸다. 외국인 등 초보자를 위해 가까운 거리에서 활을 쏘는 국궁 체험실도 운영되고 있다. 배운 지 5년 됐다는 김수환(43)씨는 “국궁은 집중력과 호연지기를 배울 수 있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종로구는 올해 말까지 황학정 주변에 국궁 전시실과 공방, 체험실 등을 확충할 계획이다. 김영종 구청장은 “황학정을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북촌·인사동·경복궁 등 지역관광자원과 연계해 더 특색 있는 전통 계승의 체험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