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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드는 질서, QR코드는 개성이다

중앙일보 2012.01.11 00:00 종합 31면 지면보기
시대는 기호에도 담겨 있다. 환갑이 된 바코드는 질서와 효율성이라는 20세기를 대변하고, 스마트폰 등 보급으로 급부상한 QR코드는 개성과 즉흥성이라는 21세기의 가치를 드러낸다. 왼쪽 사진은 2007년 바코드를 활용한 설치작품 위에 앉아 있는 전수천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오른쪽은 음악 전문방송 MTV의 QR코드. [중앙포토]


기호는 강했다. 9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지면에는 시선을 확 끄는 그래픽이 하나 실렸다. 무너져 내리는 바코드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시리즈에 맞물린 이 그래픽에서 바코드는 자본주의의 동의어로 간주되며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냈다.

예술로 본 상품코드



 1952년 특허 등록으로 탄생을 알린 바코드가 ‘환갑’을 맞았다. 그간 단순한 판매와 물류 관리 기호를 넘어 디자인과 예술 작품의 소재로 영역을 넓혀왔다. 하지만 ‘세기의 기호’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른 QR(Quick Response) 코드와의 공존을 꿈꾸고 있다.



 굵기가 다른 수직선의 연속인 바코드는 일정한 규칙을 가진 질서정연함을 보여준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9일자에서 “바코드는 20세기의 미덕인 질서와 효율성, 정확함, 신속성 등을 상징하며 생산력 혁신이 필요했던 이 시대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성은 배제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분위기가 묻어나는 기호라는 설명이다.



 바코드가 획일적이며 권위주의적인 기호가 된 것은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물류 관리 등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해독하는 데 최우선 순위가 놓이면서 개성이나 즉흥성 등이 설 자리는 없어졌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대표적인 기호인 바코드는 예술의 영역으로 확대되며 더 깊은 의미의 화학 작용을 이뤄낸다. 현대 소비주의를 비판하는 상징의 최전선에서 다양한 디자인과 예술 작품에 변주됐다. 2006년 광화문 복원공사 당시 설치됐던 가림막은 바코드를 활용한 양주혜 홍익대 교수의 작품이었다.



 바코드를 활용한 작품전을 했던 전수천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바코드는 상품의 가격을 매긴다는 그 본질적 성격으로 인해 모든 것을 물량화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시각적으로 미니멀한 느낌을 주는 것도 예술 작품에 폭넓게 쓰이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QR코드는 어떨까. 정사각형 모양에 흑백의 기하학 무늬가 그려진 QR코드는 개성과 즉흥성을 대변한다. 미로나 모자이크를 연상시키는 QR코드는 집단주의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시작된 21세기의 시대적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IHT는 “QR코드는 독을 함유한 박테리아 포자가 무질서하게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등 질서와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며 “권위주의적이거나 고압적이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자발성과 독특한 개성 등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고 밝혔다.



 2차원의 QR코드는 추상적이면서도 섬세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데다 다양한 디자인으로 변용될 수 있어 예술 작품으로 영역을 넓히는 데 장점이 있다. 기업 등도 QR코드를 홍보와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김신 대림미술관 부관장은 “QR코드를 응용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아직까지 바코드만큼 일반인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상징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QR코드에 새겨진 사각형의 크기와 위치도 엄격한 질서가 있고, 생산자가 제공하는 정보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QR코드의 한계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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