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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속현

중앙일보 2012.01.11 00:00 종합 37면 지면보기
부부 중 한쪽이 먼저 세상을 뜨는 것을 짝을 잃었다는 뜻의 실우(失偶)라고 한다. 고구려 유리왕은 까투리와 장끼의 사이 좋은 모습을 보고 떠난 치희(雉姬)를 그리워하면서 “불쌍하구나 홀로 된 나/누구와 함께 돌아갈까(念我之獨/誰其與歸)”라는 ‘황조가(黃鳥歌)’를 불렀다. 사이 좋은 꿩 부부를 보고 ‘꿩 치(雉)’자를 썼던 왕후(姬)가 생각났던 것이다.

 전국(戰國)시대 제(齊)나라 목독자(牧犢子)는 ‘아침에 나는 꿩을 노래함’이라는 ‘치조비조(稚朝飛操)’를 지었다. 서진(西晉)의 최표(崔豹)는 『고금주(古今注)』에서 나이 쉰에 부인 없던 목독자가 아침에 나무하러 갔다가 꿩 부부를 보고 지었는데, 위(魏)나라 무제(武帝) 때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입궁한 궁인(宮人) 노(盧)씨가 거문고를 타면서 애절하게 불렀다고 전한다.

 그런데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편집한 『금조십수(琴操十首)』에 실린 노래 가사는 정작 나이 칠십에 부인이 없다고 한탄하는 내용이다. 재혼을 뜻하는 말이 속현(續絃)이다. 끊어진 거문고 줄을 새로 잇는다는 운치 있는 이름이다.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의 ‘의고(擬古)’라는 시에 “(거문고) 윗줄로는 별학조를 튕기고/아랫줄로는 고란조를 연주하네/바라건대 그대 여기 머물러/세한까지 지내기를(上絃驚別鶴/下絃操孤鸞/願留就君住/從今至歲寒)”이란 시구가 있다. 이 시의 별학(別鶴)과 고란(孤鸞)이 부부의 이별을 뜻한다.

 『주역(周易)』의 ‘택풍대과괘(澤風大過卦)’에는 재혼과 관련해 재미있는 구절이 많다. 이 괘의 구이효(九二爻)는 “마른 버드나무에서 새 잎이 돋아나고, 늙은이가 젊은 아내를 얻으니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枯楊生,老夫得其女妻,無不利)”는 것이다. 그런데 구오효(九五爻)는 “마른 버드나무에서 꽃이 피고, 늙은 부인이 젊은 선비 남편을 얻으니 허물은 아니지만 영예도 아니다(枯楊生華,老婦得士夫,無咎無譽)”는 것이다. 늙은 남성이 젊은 아내를 얻는 것은 다 좋지만 늙은 부인이 젊은 남편을 얻는 것은 허물은 아니지만 영예도 아니라는, 조금은 남녀차별 의식이 엿보인다. 그러나 『주역』이 3000여 년 전 주(周)나라 때 지어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65세 이상 노인 중 3분의 2가 성생활을 한다는 정부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젊은이와 늙은이의 이분법이 깨지는 대전환기다. 백년해로하는 부부도 많겠지만 재혼도 인생살이의 자연스러운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여질 때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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