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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종결자’ 고승덕

중앙일보 2012.01.11 00:00 종합 38면 지면보기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고승덕 의원은 원조 ‘공신(공부의 신)’이다. 스물세 살이던 1980년 행시에 합격하며 고시 3관왕이 된다. 하버드·예일대 로스쿨도 다녔다. 정치 입문 전엔 방송인, 펀드 매니저로도 유명했다. 한나라당에서 서초구에서 공천을 받은 건 BBK 소방수 역할을 하면서다. 2007년 11월이다. 야당의 BBK 공세가 거셀 때 주 공격수였던 정봉주 전 의원과 맞짱을 떴다.



 가난한 시절을 보낸 그는 공부로 자신을 일궈냈다. 저서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이란 없다』에서의 그는 열정적이고 지독하다. 고시를 준비할 때는 젓가락질하는 시간이 아까워 비빔밥만 먹었다고 한다. 씹는 시간도 아까워 반찬은 아예 잘게 썰었다. 정신 집중을 위해 아예 밤낮을 바꿔 공부했다. 경기고를 졸업할 땐 “공부할 때 잠이 올까 봐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도 했다. 4년을 같이 보낸 동료 의원들은 그가 자신의 생각이 명확하고 똑똑하지만 사회성이 뛰어난 편은 아니라고 했다. 그와 가깝다는 한 의원은 “계산적이진 않지만 사교 범위가 넓지 않은 돈키호테형”이라고 평했다.



 그가 돈봉투 사건을 밖에 알린 건 돈키호테형 성격과 결심하면 해내고 마는 지독함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가 10일 회견에서 직접 설명한 이유는 이렇다. “지난달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하기 직전 재창당 방식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재창당이란 게 반드시 전당대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돈봉투가 다시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 그런 충정에서 (신문 칼럼으로) 썼다.” 그러면서 “들고 온 쇼핑백 크기의 가방에 (돈이 든) 노란색 봉투가 잔뜩 끼어 있었다”며 엄청난 사실을 다시 꺼냈다. 회견장 주변에선 ‘작심했다’는 웅성거림이 나올 정도였다. 어떤 파장이라도 감수하리란 각오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의도를 순수하게 보지 않은 시선도 있다. 지역구에 박희태 의장의 먼 친척에다 고향 후배인 전직 구청장이 출마하려 하자 폭로했다는 주장이다. 드러낸 시점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돈봉투를 받았을 때 즉시 말하지 않고 왜 공천 얘기가 나오기 직전이었느냐는 것이다.



 그 속마음을 알 길은 없다. 기자는 그가 밝힌 대로 ‘충정’이기를 믿고 싶다. 분명한 건 그가 구태의 상징인 전당대회의 돈봉투 문제를 세상에 알렸다는 점이다. ‘휘슬 블로어(내부 고발자)’ 역할을 한 것이다. 그가 제기한 문제가 본질이 아닌 이유로 사그라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시시비비가 제대로 가려지지 않고 유야무야된다면 그건 그에게도, 한나라당에게도 악재다. 아니 한국 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킬 기회를 또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도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문제를 제기한 주인공이라면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가 고민해 왔다는 ‘돈정치 청산’을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세상에 알린 것이 다라며 그저 바라만 봐서 되겠는가. 아무튼 정두언 의원의 말대로 ‘고시남 고 의원이 한나라당을 최종 정리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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