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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99> 국민음료 된 커피

중앙일보 2012.01.11 00:00 경제 13면 지면보기
커피(coffee). 이제 밥이나 김치처럼 친숙한 이름이다. 굳이 ‘커피 한잔 할래?’ 권하지 않아도 매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시는 음료가 됐다.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 유난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또 이 커피다. 너무 비싸다, 커피 전문점이 너무 많이 생긴다, 카페인이 너무 많다, 우리가 언제부터 커피를 이렇게 많이 마셨느냐 등등.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질문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 커피, 맛이 왜 이래?’ 바야흐로 한국인의 커피사랑이 변해가고 있다.


미군PX 커피 퍼지며 너도나도 … 한국 성인 1년에 670잔 마신대요

이소아 기자



전국 커피전문점 1만5000개 넘어



전설에 따르면 6세기경 에티오피아에 살던 목동 칼디는 흥분해 날뛰는 염소 울음소리를 들었다. 쫓아가보니 염소는 처음 보는 빨간 열매를 따먹고 있었다. 칼디도 호기심에 열매를 먹어보니 곧 몸에 열이 나면서 기운이 솟았다고 한다.


한국의 커피시장이 포화상태란다. 커피는 100% 수입품이라 한국무역협회의 통계를 보면 그 소비량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0월까지 커피(원두) 수입액은 5억800만 달러. 11월, 12월치를 빼고도 전년도의 3억700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었다.



커피 전문점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닐슨코리아가 추정한 2011년 커피전문점 점포 수는 약 9400개. 3년 만에 51%가 늘어났다. 업계 관계자들은 커피 가맹점(프랜차이즈) 외에 소형 점포까지 포함시키면 전국에 커피 전문점만 1만5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한국인이 커피를 많이 마실까? 동서식품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은 1년에 약 670잔의 커피를 마신다. 하루에 평균 1.83잔이다. 5잔 이상씩 마시는 북유럽 국가는 물론이고 3~4잔 이상을 소비하는 미국과 서유럽, 이웃나라 일본에 비해서도 결코 과하다고 할 순 없다.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이다, 한국인은 커피홀릭이다 하는 것도 사실은 커피 가맹점들의 놀라운 증가세, 너도나도 뛰어드는 커피창업 열풍이 반영된 문구인 셈이다. 오히려 커피 전문가들 중에는 ‘대한민국은 커피 암흑세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명품 루왁 원두, 수십배 비싸게 사기도



“커피에 대한 지식 면에선 암흑세계 같다는 거죠. 커피숍들도 ‘우리가 잘한다’는 기준이 없고, 소비자들도 ‘뭐가 좋은 커피인지’ 인식이 부족해요.” 김용덕(54) 테라로사 사장의 지적이다. 그는 우리나라 원두커피업계 1세대다. 2002년 강릉에 테라로사라는 공장형 커피 전문점을 열었는데, 커피깨나 안단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명소가 됐다. 100점짜리 커피는 ▶재료 60점 ▶로스팅(원두를 볶는 과정) 30점 ▶바리스타(커피를 만드는 사람) 10점으로 이뤄진다. 이는 커피 연구가 가장 체계적으로 진행돼온 미국과 이탈리아 커피업계의 기준이다. 그러나 한국은 가장 중요한 재료 부문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대신 생두(커피 날콩)를 수입해 볶고 내리는(추출) 데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소비자에게도 눈앞에서 볶아지고 내려지는 커피가 최고의 커피였다. 한국의 커피장인들은 20~25년 전부터 그렇게 이론서 하나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나름의’ 기준으로 ‘열심히’ 커피를 볶고 내렸다. 커피를 산업 내 경쟁이 아니라 생존과 열정의 실현이란 차원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우리 집 커피가 세계 최고인지’ 신경 쓰지 않았다. 20년 넘게 커피를 볶으면서 커피 산지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 결과 2009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선발대회인 ‘컵오브엑설런스(COE)’에 한국인 심사관은 한 명도 없었다. 너무 오래 국제무대와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한 슬픈 예가 값비싼 ‘루왁커피’다. 루왁은 인도네시아 사향고양이로, 커피열매를 먹으면 씨앗은 소화를 못 시켜 그대로 배출한다. 이 똥 안에 든 커피콩(씨앗)을 잘 씻어서 만든 커피가 루왁커피인데 독특한 향과 풍미 덕에 세계에서 제일 비싼 커피가 됐다. 물론 요즘엔 고양이를 길러 대량생산해낸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자는 “루왁콩은 산지에서 1㎏에 10달러(약 1만1000원) 정도인데 한국에선 품질이 아주 안 좋은… 그러니까 위생상태가 안 좋은 루왁을 수백 달러를 주고 산다”고 말했다. 커피 정보, 원산지와의 연계가 극도로 부족한 현실이 낳은 결과다. 한편 소비자들이 유난히 ‘커피 맛’에 관대했던 이유는 한국의 커피 역사와도 관계가 깊다.



1896년 커피 맛 본 고종, 국내 첫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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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커피 소비자는 1896년 고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서민들 사이에 대중화된 것은 1945~50년대 미군을 통해서다. 전쟁 중이니 당연히 보관과 이동이 간편한 인스턴트 커피였다. 한국에선 ‘커피=인스턴트 커피’였던 셈이다. 커피는 대부분 미군PX를 통해 불법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막대한 외화가 유출됐고 정부는 커피수입을 제한했다. 커피시장이 다시 열린 것은 1970년 동서식품이 국내 최초로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하면서부터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음악 전문다방들이 큰 인기를 끌었고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 같은 ‘황금비율’도 존재했다. 원두커피 전문점은 서울올림픽 전후로 생겨났다. 1988년 12월 압구정에 문을 연 ‘쟈뎅(Jardin)’이 그 시초다. 그리고 1999년 드디어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근처에 1호점을 내면서 에스프레소 전문점들의 전성기가 열리게 된다. 참고로 인스턴트커피도 원두로 만드니까 엄밀히 말하면 원두커피다. 하지만 요즘엔 중력을 이용해 뜨거운 물로 내린 드립커피를 흔히 원두커피라고 부른다. 어쨌든 한국인들은 인스턴트커피를 사랑하고, 또 스타벅스·할리스·카페베네 등 에스프레소 전문점을 사랑한다. 이에 대해 커피콘텐츠그룹 ‘이터널선샤인’의 박우현씨는 “인스턴트커피와 자판기 커피, 에스프레소가 성공한 이유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와 맞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에스프레소 전문점은 IMF 외환위기 이후 ‘나홀로족’들과 궁합이 맞았다. 핵가족에서 성장한 세대들이 사회에 나와, 혼자 있어도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커피전문점으로 몰려든 것이다. 게다가 우리 곁에 물처럼 마시던 전통음료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차(茶)는 특별할 때나 마시는 음료였다. 커피는 그 자리를 대체하기 딱 좋은 대상이었다.



이제 사랑할 대상이 하나 더 늘었다. 바로 원두커피, 천천히 내린 ‘드립커피’다. 커피가 나오는 속도보다 원산지·신선도·맛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 커피는 어떻고, 케냐 커피는 어떻고 하는 지식이 늘어난 것도 큰 원인이지만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커피를 ‘음식’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음식의 핵심은 재료의 질이다. 커피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무역협회의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인스턴트커피의 원료로 사용되는 베트남산 커피 수입이 급감한 반면, 드립커피나 고급 커피에 쓰이는 콜롬비아·브라질·온두라스산 수입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커피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보통 명품’



여기서 가격 문제를 짚어보자. 이미 스타벅스 등 에스프레소 전문점들에서 파는 커피 한 잔의 원가가 채 200원이 안 된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분노(?)가 일기도 했다. 한국의 1호 원두커피 기업인 쟈뎅의 윤상용 부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쟈뎅은 오래전에 커피 전문점 사업을 접었다. “죄송하지만 커피 전문점에서 마시는 커피는 원두가격이 아니라 설렁탕값이랑 비교하셔야 해요.” 점포에 들어가는 권리금·월세·인건비·매장관리비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말 그대로 ‘외식사업’이라는 것이다.



스타벅스 측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커피 한 잔 값에는 임대료와 인건비뿐만 아니라 바리스타 교육, 인재개발 비용이 다 들어 있어요. 게다가 한국 스타벅스에선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공짜잖아요. 파리 스타벅스에선 와이파이(wifi) 쓰려면 30분에 2.5유로(약 3700원)를 내야 해요.” 스타벅스는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지만 많은 커피 전문점들이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되고, 점주들은 평균 10억원 안팎으로 들어가는 비용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커피의 품질이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커피 전문점이 문제가 된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김용덕 테라로사 사장은 커피를 ‘보통명품’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비싸 봤자 마음만 먹으면 대기업 회장님이 마시는 비싼 커피를 나도 사 마실 수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 커피 경매장에서 르완다 커피를 1㎏에 44달러에 샀어요. 세계에서 둘째로 비싼 가격이었죠. 좋은 커피라면 돈을 아끼지 않아요. 우리 목표는 커피의 에르메스나 샤넬이니까요.” 하지만 명품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에르메스나 샤넬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멋진 디자인과 품질을 자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내 맘에 들면 그걸로 그만이다. 커피 역시 누구나 입맛대로 최고의 것을 즐길 수 있는 ‘보통명품’이란 얘기다.



비싸도 품질 좋은 커피 찾은 소비자 늘어



시장은 소비자들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더 다양한 커피, 더 좋은 커피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커피 관련업계도 이를 만족시키기 위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외국의 커피 전문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점을 깨달았다. 최근엔 국내 커피업체들이 여기에 자극을 받는 분위기다. 동서식품은 크림의 성분을 몸에 좋은 우유로 바꿨고, 이마트는 브라질 세라도 원두커피를 커피 전문점보다 50~80% 싸게 팔아 화제가 됐다. 커피농장에서 비행기로 생두를 직송해 국내기업 쟈뎅이 매장에서 로스팅한 결과다. 윤상용 쟈뎅 부사장은 “국내 커피 관련업체들은 소비자들이 점점 더 원료에 충실한 맛, 몸에 좋은 커피를 원하고 있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뛰어난 품질과 상품에 대한 기준, 지식, 정의를 세우고 좋은 원두를 찾아내 공동 구매해 공동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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