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늘어지면 아웃...'20초 동영상, 140자 구호'로 승부

중앙선데이 2012.01.08 01:18 252호 4면 지면보기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여의도의 국회 민주통합당 대표실에서 원혜영 공동대표가 모바일 투표방식을 직접 시연해 보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에 뛰어든 한명숙 후보는 ARS 음성 메시지로 유권자들을 공략한다. 스마트폰으로 1666-0101을 누르면 “이기고 싶다면 기호 1번 한명숙”이라는 육성 녹음이 나온다. 20초에 불과하다. 문성근 후보의 모바일 동영상 역시 20초다. 문 후보 측에서 만든 QR 코드를 스마트폰에 인식시키면 “정당 혁신을 위해선 한 번 쓰이고 버려져도 좋다”는 자막과 함께 짧은 동영상이 흐른다. 후보 9명 모두 심혈을 기울이는 트위터 세상에선 당연히 140자 단문의 선거전이다. “정치 9단 시대는 지났다”(박영선), “화나시죠. 자고 나면 날치기니”(이인영), “야생마 김부겸이 되겠습니다”(김부겸) 등이다.

사이버 선거전 새 풍속도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에서 선거전의 초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모바일로 집중되며 본격적인 ‘사이버 선거전’이 치러지고 있다. ‘20초 동영상, 140자 구호’의 싸움이다. 정보기술(IT)업체 나우콤을 창업한 문용식 민주통합당 인터넷소통위원장은 “이번 경선은 한마디로 모바일 선거다. 현장 투표 대신 모바일 표심이 관건이다. SNS 사용자를 잡는 게 가장 중요하게 됐다”고 단언했다.

연령상 20∼30대의 젊은 층이 일반인 유권자로 대거 등록했기 때문이다. 작가인 유시춘 당 최고위원은 “젊은 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다. 짧고 선명해야 한다. 동영상이 조금만 늘어져도 이들은 곧바로 떠난다”고 말했다. 한명숙 후보가 홈페이지에 올린 지지 호소 동영상(여균동 감독 출연) 역시 30초 분량이다.젊은 층이 대다수인 사이버 공간의 선거전이다 보니 재미와 감성이 핵심 선거전략으로 떠올랐다. 박용진 후보는 트위터에 요즘 인기를 얻는 개그 프로그램을 패러디해 “누구 찍을지 애매하죠. 지금 정해드립니다잉~박용진에게 한 표 찍는 거 어렵지 않아요. 딱 정한 겁니다잉~”이라는 동영상을 올렸다.

당내에선 유머감 없기로 유명한 이인영 후보조차 트위터에 자신에게 온 트윗인 “원더걸스가 즐겨먹는 쌀은?→텔미”를 소개하며 “저보다 더 썰렁한 분이네요. 반가워요^^”라고 쓸 정도다. 한 후보 측의 홍성훈 사이버팀장(민주통합당 SNS특위 위원장)은 “트위터리안들이 트위터 140자에서 바라는 것은 논리와 설득이 아니라 느낌”이라며 “‘꼰대’ 인상을 주면 안 된다. ‘나와 같다, 얘기가 통한다’고 느끼게 하는 게 SNS 선거전의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권위 파괴’가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직 총리와 원내대표가 사이버 공간에선 돌변한다. 한 후보가 트위터에서 “봉 도사님~어디쯤인가요?”라며 정봉주 전 의원을 지칭하는가 하면, 박지원 후보도 “봉 도사는 쌍깔때기 박지원이 구하겠습니다”라며 그들만의 용어를 쓴다. 쌍깔때기는 정 전 의원이 나꼼수에 출연해 만든 유행어인데, 누군가의 말을 한참 듣다 보면 깔때기처럼 자기 자랑으로 귀결된다는 의미다.

2010년 송곳 추궁으로 인사청문회에서 김태호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킨 박영선 후보는 지지 모임을 홍보하며 “오늘 저녁임다. 많이 참석해주삼!”이라고 트윗을 날렸다. 박용진 후보는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제가 한 살 형이에요”라는 글을 받고는 트위터에“네네 형님… 한 표 부탁… 굽신굽신^”이라고 답했다. 선거전의 동력도 인터넷 팬카페 등 온라인 공간의 얼굴 없는 네티즌이 됐다. 한명숙 후보의 경우 다음 팬카페 회원 1만여 명이 활동 중이지만 그중 한 후보 측이 직접 만나본 이는 세 명뿐이다.

조직원 단합대회와 같은 방식은 구태가 됐다. 박영선 후보는 지난 6일 밤홍대 앞에서 지지자들을 트위터 번개팅으로 불러 모았다. 모바일ㆍSNS 선거는 이렇게 선거전의 양상을 바꾸며 젊은 층들이 정치에 접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하지만 우려도 만만치 않다. SNS 선거를 맡고 있는 한 담당자는 “솔직히 30초 동영상과 140자 단문으로 무얼 보여줄 수 있겠는가. 순간의 인상을 심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미지 정치가 SNS 공간에서 더 극성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시선 끌기에 주력하다 보니 자극적인 소재까지 동원된다. 박지원 후보는 트위터에 ‘쥐잘 잡는 사람 뽑아야 총선 승리 가능합니다’라고 올렸다. 연결된 사이트로 가면 ‘쥐잡기 5관왕 박지원’이라는 3컷 만화가 뜬다. SNS 여론몰이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트위터ㆍ페이스북 공간에서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재협상이 아닌 폐기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당 지도부 경선에 나선 후보 9명이 일제히 ‘폐기’를 주장하며 선명성 경쟁을 하는 게 그 예다. FTA 폐기가 적절하거나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토론은 사라지고 SNS 표심 얻기에만 집중하는 모양새다.

후보자들은 이번 선거인단 등록에 적극 뛰어든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인터넷 카페 나꼼수 등을 의식해 정봉주 전 의원의 석방운동 경쟁도 벌이고 있다. 미권스와 나꼼수는 ‘정봉주 석방’을 내건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후보자들이 당 대표로서의 능력ㆍ자질을 보여주기보다 사이버 공간의 이슈에 더 매달린다는 지적을 받는 대목이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