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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단문 쓰려면 책부터 읽어라

중앙선데이 2012.01.08 00:22 252호 14면 지면보기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생각이 에너지다’ ‘차이는 인정한다, 차별은 도전한다’…. 한 문장의 힘이 위력을 발휘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광고 카피다. 간결하면서 핵심을 짚는 촌철살인이야말로 광고 카피의 생명이다. 이 문장들의 산파 역할을 한 광고인 박웅현(51)에게 한 문장에 핵심을 담는 법을 물었다. 카피라이터로 출발, 올해로 광고 경력 25년째인 그는 외국계 광고회사 TBWA코리아 제작전문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책은 도끼다''우리 회의나 할까?''인문학으로 광고하다'등의 저서를 냈다.

‘생각이 에너지다’ 名카피 만든 박웅현씨

-인상적인 짧은 말을 모은 어록이 유행한다.
“인터넷 시대의 어쩔 수 없는 대세다. 긴 호흡이 끊어졌다. 트위터가 가세하면서 단문(短文) 트렌드는 더욱 강해졌다. 앞으로 더할 거다. 이제 핵심만을 얘기해야 하는 시대가 온 거다. 짧으면 다 되는 게 아니다. 짧으면서 핵심을 찔러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뭔가를 잘 설계하려면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이선희, ‘알고 싶어요’)나 ‘(분청사기는) 하늘을 땅으로 부른 그릇’(호림미술관) 등에는 본질이 담겼다. 현상은 복잡하다. 하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짧은 글의 힘을 느낀 대표적인 경우를 소개한다면.
“2002년 효순·미선양 사건으로 벌어진 촛불시위 때다. 그때 시청 앞에 10만 명을 모은 건 딱 세 줄이었다.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 된다고 합니다. 광화문을 우리의 영혼으로 채웁시다. 미선이·효순이와 함께 수천, 수만의 반딧불이 됩시다’. 이걸 네티즌이 퍼나르면서 엄청난 결과로 나타난 거다. 이걸 우리가 한 스포츠업체 광고를 만들면서 ‘죽은 이의 영혼은 반딧불이 된다고 합니다. 촛불을 준비해 주십시오. 저 혼자라도 시작하겠습니다’로 다듬었다. 이 카피는 결국 쓰이진 않았다.”

-지난해 유행한 어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
“김어준의 ‘쫄지마’였다. 반(反)MB 정서라는 사회적 맥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종류는 다르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외고 학생이 유서에 남겼다는 ‘이제 됐어?’도 충격적이었다. 그 학생이 전교 1등한 다음에 그 말을 했다는 맥락 때문이었다. ‘어록’으로 불리는 유행어를 보면 문맥상, 맥락상으로 공감을 얻은 경우가 많다. 카피도 마찬가지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건 1996년에 나왔다. 대한민국 버블경제의 정점이었다. 그게 2년 후에 나왔다고 가정해보라. 아마 난 ‘미친 놈’ 소리 들었을 거다. ‘생각이 에너지다’도 그렇다.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라는 공감대가 있었으니 뜬 거다.”

-‘한 줄’을 뽑아내는 비결이 궁금하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인터넷 클릭할 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한다. 파편적 정보가 아니라 총체적 정보를 접하란 얘기다. 박경리의'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아리랑' 같은 대하소설이 내겐 역사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시대를 나무로서가 아니라 숲으로 보게 해줘서다. ‘한 줄’은 생각의 증류작용에서 나온다. 명(名)카피는 절대로 순간적인 재치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Eureka! It really takes years of hard work’이란 게 있다. 무릎을 치는 ‘유레카’의 순간은 사고와 고민 끝에 나온다.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단문을 쓰고 싶다면 생각부터 해라.”

-다독과 사색이 결국 왕도인가.
“그렇다. 사람이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정리를 한 결과물이 두 가지 있다. 책과 강의다. 많이 읽고 많이 들어야 한다. 카프카가 ‘책은 도끼’라고 했다. 책을 읽으며 생각의 도끼질을 해야 한다. 황무지에선 경천동지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대화와 여행도 좋다. 이렇게 훈련된 상태에서 민감하게 촉수를 세우고 있다 보면, 똑같은 걸 보고 남이 못 잡아내는 게 나한텐 보인다. 트위터에서 RT(리트윗·재전송) 많이 되는 글을 쓰고 싶나? 그렇다면 머릿속에 자양분부터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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