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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도, 일과도 따로 노는 인생살이,그 속에도 ‘닥치고 음악’인 순간 있네

중앙선데이 2012.01.07 22:39 252호 27면 지면보기
미국 산타페 오페라의 2011년 39보체크39 공연. [사진=켄 하워드]
오늘. 스브스(SBS) 티비의 시사토론 패널로 참여하고 막 돌아왔다. 올해 뽑게 될 새 대통령의 자격이 주제였다. 언제나처럼 호통치는 전원책 변호사와 정반대 의견으로 으르렁으르렁했다. 사적으로는 형님처럼 편한 양반이건만…. 어제 낮. 처음 보는 공연 전문지 기자들이 찾아와 한나절 인터뷰를 했다. 몰입과 취향의 세계를 테마로 하는 인물 인터뷰였는데 문득 어딘가에서 이미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젯밤. 고봉순(KBS) 티비의 클래식 오디세이라는 프로에 나의 작업실 생활이 한 꼭지로 나왔다. 지난주 촬영해 간 내용인데 예의 ‘음악밖엔 난 몰라’ 식의 오타쿠적 음악광으로 그려진다. 어여쁜 여자 아나운서와 거닐면서 얘기하는 화면에서 으아, 저 친구 참 키가 작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자기 확인. 그저께. 마봉춘(MBC) 라디오의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프로에 출연. 진행자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씨였는데 대담 주제가 아, 글쎄, ‘연애’였다. 상상해 보시라. 늙수그레한 중년 아저씨 둘이 장장 한 시간 꼬박 연애론을 주고받다니. 그그저께, 그러니까 1월 2일 월요일 하루는 꼬박 커피였다. 그린빈(생두)을 다량 적재해 놓아야 할 필요가 생겨서인데 구입 과정이 좀 기구하고 복잡했다. 최종적으로 평범하고 저렴한 콜롬비아 수프레모를 물경 10㎏이나 구입해 낑낑대며 지고 왔다. 마침 이베이에서 주문한 1930년대 퍼콜레이터 포트 두 대가 배달돼 있었고.

새해 첫 주 일기를 써 놓고 웃는다. 대통령, 음악, 연애, 커피…. 그대는 대체 뭐하는 인간이나뇨? 사람들 관계에 얽매이지 않겠다며 무례를 무릅쓰고 대부분의 경조사조차 불참하며 작업실에 틀어박혀 산다. 어인 시사토론이고 주책 맞은 연애론은 웬 말인가. 혹시 출연료 때문일까. 아니면 참을 수 없이 왕성한 발표력 탓인가. 남들도 대개 그런 모양이더라만 자기가 누군지가 제일 궁금한 법. 나는 대체 누구일까. 그저 음악만 듣고 사는 사람이라고 쉽게 빠져나가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고전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정치 따위에는 무관심해야 제격일까.

문득 최근 내 음악적 관심사인 쇤베르크가 듣고 싶다. 아, 쇤베르크 하면 자동으로 따라붙는 두 인물이 있지. 동료이자 제자에 해당하는 알반 베르크와 안톤 베베른.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을 묶어 빈 3인조라고 하는데 새롭게 위 세 인물을 묶어 제 2차 빈 3인조라고도 부른다. 하나의 에콜로서 현대음악에 미친 영향력 면에서 그렇게 불릴 만한 급수라는 얘기다. 한 스승 문하에서 컸어도 대물림은 제각각이다. 전반적으로 베베른 음악이 간명하고 좀 더 난해한 반면 베르크는 훨씬 서정적이면서 드라마틱하게 귀에 감긴다. 특히 오페라는 이들 3인조 가운데 베르크가 발군이어서 그의 작품 ‘보체크’와 ‘룰루’는 필청 음악으로 꼽을 만하다. 하급병사의 처절한 인간 조건과 그로 인한 잘못된 사랑이 그려지는 ‘보체크’. 그리고 여러 남자를 파멸시키고 자기도 망가지고 마는 여인 ‘룰루’의 이야기. 이건 2000년대 현대인이 상시 경험하는 극한적 고독과 절망감에 맞닿아 있는 터라 베르디·푸치니 오페라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안겨 준다. 영혼이 아프고 싶을 때 듣는 음악이다.

안톤 베베른
아, 그런데 무리다. 암만해도 무리다. 새해 첫 주의 뒤죽박죽 일과와 그 틈새에 쇤베르크 또는 알반 베르크 음악이 듣고 싶어진 충동을 의미 있는 것으로 연결시켜 보려는 시도는 무리다. 새 대통령 자격 토론과 몽롱한 연애론과 불쌍한 ‘보체크’가 무슨 관계람. 요가를 할 때 드럼을 칠 때 온 사지가 따로따로 논다는데 그렇게 관심사도 일과도 제각각 따로 놀며 한 인생을 보낸다. 그런데 그래서 뭐 어쨌다고!

어떻게든 수습을 해 보자. 살벌한 현대음악을 즐기는 어떤 사내가 있다. 그는 애써 고립을 취하여 마포의 한 지하층 공간에 틀어박혀 산다. 하지만 그 아득한 지하공간에서도 시국이며 남북 관계, 자본주의 위기와 중산층 붕괴 문제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고급한 커피문화를 향유하면서 멋진 연애에 대한 선망도 떨치지 못하건만 생체실험에 몸을 팔아야 하는 가련한 하급병사의 이야기 ‘보체크’의 처절함에 또한 이끌린다. 그는 그러한 자기가 누구인지 몹시 궁금하다. 19세기를 사는지 21세기를 살고 있는지, 정말로 고립돼 있는지 온 세상에 촉수를 뻗고 있는지. 왜 사는지, 왜 사는지, 정말로 왜 사는지….

그래서 음악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한 떨기 꽃이 자기가 피어난 이유를 설명하지 않듯이,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 했듯이 닥치고 음악이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보체크 음반이 다 돌고 나면 곧장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리라. 그거 정말 오싹한 걸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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