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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강장 뛰어난 ‘바다의 인삼’...양념소로 채워 전,찜으로 즐겨

중앙선데이 2012.01.07 20:22 252호 30면 지면보기
중국 사람들은 해삼이 남자의 음경(생식기)과 같이 생겼다고 보고 ‘해남자(海男子)’라 불렀다. 중국 바다에는 없고 조선·요동·일본 바다에서만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생것은 쓰지 못하고 말린 해삼(乾海蔘)만을 술안주 중 가장 진귀한 식자재로 썼다. 건해삼에 대한 중국인의 선호는 급기야 해삼 짝퉁을 만들기도 했다. 명대(明代)의 사건이다. 당나귀 음경을 해삼으로 속여 만들었는데, 맛은 거의 비슷해 구분할 수 없지만 형태가 조금 편편한 것으로 짝퉁인지 아닌지 겨우 구분했다고 한다.바다 깊이 10~30m 되는 곳에 서식하면서 수온이 16도 이상 되면 바다 밑바닥으로 깊이 파고들어가 그 속에서 여름잠을 자는 놈이 해삼이다. 겨울철에 활동하기 때문에 겨울에 많이 잡히고 봄에 모습을 감추기 시작해 여름에는 완전히 볼 수 없다.

김상보의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알아보는 ‘제철 수라상’ <6> 해삼

정약용의 둘째 형인 정약전(1758~1816)이 지은 『자산어보』에는 이렇게 기술돼 있다. “우리나라 동해·서해·남해 바다에 다 서식한다. 잡아 말려 건해삼을 만들어 판다. 전복·홍합·해삼을 ‘삼화(三貨)’라 한다. 해삼을 식자재로 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비롯되었다. 바다의 인삼(人蔘)이라 해삼(海蔘)이라 한다.”
『자산어보』를 근거로 한다면 해삼이든 건해삼이든 한반도에서 식용화해 중국으로, 일본으로 확산된 셈이 된다. 당시에는 상당히 비싸 돈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혈분(血分·혈액의 영양)을 돕는 약의 하나로 치는 해삼이 가진 자양분의 성능은 인삼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해삼의 또 다른 명칭인 사손·토육(土肉)·해서(海鼠)·사산(沙蒜)·해남자는 바로 해삼이 가진 약성(藥性) 때문에 붙여진 것이 아닐까 한다.

한겨울 해녀들이 바닷속에 들어가 잡아와야만 하는 해삼은 분명 귀한 진공품이었을 것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1757)에 따르면 강원도 감영·강릉·고성·통천·평해·회양·흡곡에서, 경상도 거제·사천·진주·창원에서, 전라도 광양·나주·낙안·보성·순천·영암·장흥·진도·해남에서 진공했다. 진공된 해삼은 내장을 뺀 다음 썰어 참기름을 섞은 초장에 찍어 먹는 해삼회(海蔘膾), 토막을 쳐서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낸 해삼백숙(海蔘白熟), 새우젓 액에 담은 해삼알(배 속에 풀 형태로 있는 적황색 알)을 쇠고기·파·두부와 함께 넣고 끓인 해삼란조치(海蔘卵助致), 원미(元味·쌀을 굵게 동강나게 갈아 쑨 죽. 여름에 꿀과 소주를 타서 차게 해 먹었다)를 쑤다가 잘게 썬 해삼을 넣고 끓여서 만든 해삼원미(海蔘元味) 등으로 만들어졌다.

한편 해삼 배 속의 장을 없앤 후 그릇에 담아 불에 올려놓고 볶으면 해삼 몸 안에 있던 액즙이 빠지고 겉은 타서 검어진다. 이것을 식혀 햇볕에 말린 것이 건해삼이다. 건해삼 진공은 강원도 간성과 삼척에서, 경상도 고성과 곤양 그리고 칠원에서 있었다. 겨울에 잡은 해삼은 건해삼으로 만드는 기간이 있었으므로 5, 7, 8, 9월에 진공했다. 이것을 물에 오랫동안 삶아 부드럽게 하여 탕·전·증·숙으로 만들었다.

건해삼에 녹두녹말가루·참기름·간장·파·후춧가루·잣을 양념으로 해 전복·쇠고기안심육·곤자소니(소의 막창)·양·닭·계란·무·오이·미나리·표고버섯·석이버섯의 부재료와 화합해 만든 국이 해삼탕(海蔘湯)이다. 곱게 다진 쇠고기업진육에 으깬 두부를 섞고 간장·잣가루·참기름·소금·생강·파·후춧가루로 양념해 소로 만들어 해삼 배 속에 집어넣고 쌀가루와 달걀로 옷을 입혀 참기름에 지져낸 것이 해삼전이다.

다진 돼지고기와 닭고기에 으깬 두부를 합해 다진 파·참기름·간장·후춧가루로 양념해 소로 만들고 해삼 배 속에 이 소를 넣고 녹두녹말가루와 달걀로 옷을 입혀 참기름으로 지져 닭 육수를 부어 중탕해 쪄낸 것이 ‘해삼증(海蔘蒸)’인데, 전복과 합해 만든 것을 삼복숙(蔘鰒熟)이라 했다. 안동의 장씨 할머니(1598~1680)가 며느리에게 음식 만드는 비법을 전수하기 위해 손으로 조리서를 썼다. 이 조리서가 『음식디미방』이다. 여기에도 건해삼으로 만든 해삼탕과, 다진 꿩에 후춧가루·천초가루·밀가루를 합해 해삼 배 속에 넣고 실로 동여매 중탕해 찐 해삼찜이 등장한다. 비록 비쌌지만 일찍이 반가에서는 진미 식품의 하나로 종종 먹었던 것이다.

이렇듯 일찍이 궁중과 민중에서 널리 애식되고 있었던 해삼을 일본인이 쓴 『조선의 특산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1933)에는 “조선 사람은 근년까지 해삼을 먹지 않았다. 일본인이 옮겨와서야 그 맛을 알게 되니 요즘 겨우 시장에 그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적혀 있으니 왜곡도 이런 왜곡은 없다. 일본 우월의식에서 나온 글로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한양대 식품영양학 박사.『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한국의 음식생활문화사』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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