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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누가 ‘루비콘’을 건널 것인가

중앙일보 2012.01.07 00:00 종합 31면 지면보기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기원전 49년 로마 속주 갈리아의 집정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장고(長考) 끝에 루비콘강을 건넜다. 그리고 로마 원로원의 후원을 업은 폼페이우스와 일전(一戰)을 치르게 된다. 승리의 신은 카이사르의 편이었다. 정권을 잡은 카이사르는 결국 개혁을 완성하지 못한 채 브루투스에 의해 암살된다. 화려한 로마 제정의 꿈은 그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비로소 꽃을 피운다.



 카이사르는 전사(戰士)로서의 그의 인생에서 수없이 많은 강을 건넜다. 그러나 루비콘 이외에 다른 강들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다. 루비콘이라는 작은 강을 건넌 전사도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도 일일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다. 다른 전사들과 달리 카이사르는 로마법이 금지한 군대를 동반함으로써 고집불통 원로원에 저항하는 초강성 메시지를 앞세워 루비콘을 건넜다. 그래서 고대 로마의 많은 강 중 유독 루비콘만이 기억된다. 그래서 많은 전사들 중 오직 카이사르만이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됐다.



 2012년 한국 사회의 루비콘은 무엇인가. 누가 선두에 서서 어떻게 건널 것인가.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동원해 역사의 강을 건너려 하고 있다. 70대의 노장 정치인과 20대의 청년을 함께 선발대에 편성했다. 그동안 애용해 왔던 ‘보수’의 깃발을 잠시 내리고 ‘소통’과 ‘복지’의 깃발을 새로 올리면서 강 건널 채비를 하고 있다. 문제는 보수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보수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숙고와 실천의 부재에 있었던 것을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그럭저럭 소통만 되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의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무엇을 위한 보수였는지 스스로도 잘 몰랐던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앞으로 어떤 비전을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루비콘 앞에 선 카이사르의 로마의 미래에 대한 숙고의 수준에 한참 미흡해 보인다.



 민주통합당은 대표 경선에 모바일 투표의 비중을 크게 늘리는 방법으로 소통과 참여의 장을 확대하고 있다. 나름대로의 루비콘을 건널 준비의 시작이다. 그런데 정작 각 후보와 정파의 관심은 투표 결과의 손익계산서에만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 진보의 방향성과 비전을 바탕으로 국가라는 팀 전체의 궁극적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정공법은 눈에 띄지 않는다. 플레이어 각자가 상대 팀의 실책을 틈타 개인 공격점수를 늘리고 이를 통해 다음 시즌 개인 연봉협상에 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그래서는 국민과 함께 루비콘을 건너기 힘들다. 설사 건넌다 해도 미래가 매우 불투명하다.



 루비콘 앞에 선 또 한 명의 전사는 안철수 원장이다. 상처받은 청년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나눔의 문화를 선도하면서 서서히 도강(渡江) 준비를 하고 있다. 등판 주기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절히 조절하고 있다. 최소한 소통 측면에서는 잘 준비된 전사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역시 그에게도 문제는 소통의 내용이다. 국가 경영에 대한 비전의 문제다. 이제는 IT산업과 융합기술의 범주를 넘어서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국제 경제, 내수 경제와 복지,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 갈등, 교육과 미래 한국에 대한 비전의 깃발과 그 색깔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루비콘 강가에 같이 선 군사들이 동요하지 않는다.



 지금 국민이 생각하는 국가 리더십의 첫째 요건은 ‘신실(信實)함’이다. 신실함의 반대어는 ‘위선(僞善)’이다. 국민들은 겉으로는 현란해 보이지만 속은 다른 정치공학 구호의 위선을 잘 알고 있다. 보수이건 진보이건, 혹은 그 중간 어디이건 간에 ‘뼛속부터’ 한결같은 모습을 국민들은 기다린다. 표피적이고 허위적인 정치공학 수준이 아닌 본질적 통치철학 차원에서의 소통이 그래서 필요하다. 또 하나의 요건은 국가 통치자로서의 ‘결단력’과 ‘용기(勇氣)’다. 카이사르에게 루비콘을 건너는 결단의 순간은 피를 말리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초인적 용기가 필요했음이 분명하다. 예측을 불허하는 작금의 국내외 정치, 경제 상황은 순간순간 루비콘을 건너는 수준 이상의 결단과 용기를 요구한다. 중요한 순간 머뭇머뭇하면 이도저도 아니다. 체화(體化)된 통치철학과 소통의 내공으로 왜 강을 건너야 하는지 설득하고 함께 손을 잡고 건널 시점을 결단하는 용기의 리더십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금년 내내 언론은 대선후보 검증에 온 힘을 쏟을 것이다. 후보들이 국민들과 어떤 소통을 하고 있는지 눈여겨봐 주길 부탁한다. 특히 정치공학을 위한 수단적 소통과 통치철학에 대한 본질적 소통을 제대로 구별해 줄 것을 부탁한다.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결단력과 용기 또한 분명히 검증해 주기를 부탁한다. 결국은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넘어가야 할 루비콘이 역사에 과연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를 잘 생각하면서 말이다.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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