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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박힌 봉사는 싫다 … 중·고생들의 나눔 현장

중앙일보 2012.01.04 04:54 Week& 6면 지면보기
맷돌봉사단 김지수(오른쪽)군이 멘티들을 위해 서점에서 대입 수험서를 골라주고 있다. [황정옥 기자]
김지수(서울외고 3)군은 형사처벌을 받은 청소년들의 친구(멘토)가 돼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군은 지난해 12월 17일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멘티 2명과 함께 서울 광화문의 한 대형서점 대입수험 코너에서 교재를 골랐다. 그는 이들에게 교재를 보여주며 “공부할 때 문제풀이부터 시작하면 어려우니까 개념서로 기초부터 다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군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두 사람은 지난해 8월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배모(19)씨와 정모(15)군. 김군이 속한 서울외고 맷돌봉사단 회원들로부터 틈틈이 학습 지도를 받아 이룬 성과다.


공부 막막한 친구에게 교재?학습법 알려주고
종로에서 장애인 위한 거리 캠페인 벌여

맷돌봉사단은 경찰이 되고 싶은 김군의 제안으로 2009년 초 서울외고 학생 5명이 모여 만들었다. 형사처벌을 받은 청소년들에게 또래 멘토링을 해주는 것이 이 모임의 주요 활동이다. 김군은 “한때 잘못을 해 법적 처벌을 받은 청소년들이 과거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작으나마 힘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 봉사 동아리를 찾지 못한 김군은 직접 맷돌봉사단을 만들게 된 것이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운영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번은 맷돌봉사단 회원들과 멘티들 간에 친목 도모를 위해 체육대회를 열었는데 시비가 붙은 일이 있었다. 특목고 학생들이라는 이유로 그들로부터 배척을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화해하는 과정에서 모두 친구가 됐고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는 친밀한 관계가 됐다. 특히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청소년들에게는 맷돌봉사단 회원들이 든든한 과외 선생님이 됐다. 정군은 “혼자 공부하려니 막막했는데 형들의 도움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방향이 잡혔다”며 고마워했다. 배씨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사회복지사가 돼 제가 받았던 것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어요.”



자신의 재능 살린 봉사 동아리 결성해 실천



맷돌봉사단처럼 학생 스스로 봉사 동아리를 구성해 기획하고 실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심지어 학생이 가족들과 함께 정기적인 봉사 활동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 기존에 있는 봉사 동아리에 가입해도 되지만 조건이나 활동에 제약이 있을 수 있고,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봉사 활동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김군은 “우리 스스로 새로운 봉사 동아리를 만들어 직접 기획해 활동하기 때문에 열정과 보람이 배가 된다”고 말했다. 김기연(서울 예일여고 2)양은 검도 재능을 살려 가족 봉사단을 만들었다.



김양은 검도 4급이다. 지난해 4월부터 검도사범 자격증이 있는 아버지와 검도 5급인 여동생과 함께 서울 삼양동종합복지센터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검도 지도를 하고 있다. 김양이 직접 수업 계획을 세우고 아버지는 딸의 계획에 맞춰 수업을 한다. 여동생은 기본기 시범을 맡고, 김양은 기획과 함께 진도가 부진한 아이들의 개인 교습을 담당하고 있다. 자신의 용돈을 털어 잘 하는 아이들에게 줄 상품을 마련하기도 했다. 김양은 “저만의 특기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봉사단을 직접 만들고 운영하다 보니 책임감이 크고 자신감도 생긴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태현(40·서울 은평구)씨는 “처음에 아이가 봉사단을 직접 운영하겠다고 해 걱정을 했지만 가족봉사 활동을 통해 한층 의젓해졌다”고 말했다.



하나고 이한희(2학년)군은 봉사를 좀 더 세분화시키고 전문화하기 위해 ‘인터랙트’라는 봉사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장애아동멘토링팀·장애가정지원팀·독거노인복지팀·창의력과학실험팀 중 자신이 원하는 봉사를 할 수 있게 했다. 전민주(2학년)양은 “팀별로 한 해 계획을 세우고 봉사 방향과 실행계획을 정한다”고 설명했다. 장애아동멘토링팀은 지난해 종로에서 장애인 지하철 이동권 확대를 위한 거리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청심고 TLE(Teach·Learn and Enjoy)는 학습 자원봉사 동아리다. 사설 공부방에서 단순히 학습 지도 봉사만 하다 보조 역할에 국한되는 봉사에 한계를 느껴 근처 공공기관과 도서관 수십 곳을 찾아가 수업을 열고 싶다고 어른들을 설득했다. 수업 계획표를 만들고 공문을 보낸 끝에 지난해 설악 도서관에서 수학·영어반을 개설했다. 남효영(2학년)양은 “학습 계획부터 교재 선정, 수업 지도, 학부모 상담까지 회원들이 모두 담당한다”며 “결석생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한 초등학생은 수학 점수가 40점까지 올랐다”고 자랑했다. 남양은 “봉사시간을 채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봉사하면서 책임감을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글=김슬기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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